4학년이 10줄 쓰는 건 식은 죽 먹기죠

by 영자의 전성시대

학교 일의 번외 편으로 교육지원청의 사업으로 중학교에 가서 진로독서 수업을 하게 되었다. 다른 선생님들과 3차례의 회의를 통해 책으로 진로를 찾을 수 있도록 총 180분의 수업 계획서와 교안과 PPT까지 아이들이 좋아할 수 있도록 신경 써서 만들었다.


나는 우리 학교의 6학년 정도의 수준을 기준으로 잡고 어렵지 않게 계획하려 했다. 아이들은 어려운 것보다 쉬운 것에 더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1차시에 쓸 참고도서도 요시타케 신스케의 책으로 정해 재미로 아이들의 관심을 끌어 볼 요량이었다.


중학생들은 호불호가 강하기 때문에 처음에 잘 보이는 게 중요하니 듣고 생각하고 쓰고 발표하는 과정을 잘 따라오는 아이들에게 간단한 간식도 보상으로 주기로 했다. 그렇게 첫 학교로 향했다.


초등학교 교사인 나는 기본적으로 상냥한 말투를 장착하고 있다. 그리고 아주 쉽게 설명하고, 반복적으로 설명하는 로봇 같은 말투도 습관이 되었다. 그런데 첫 학교에서 만난 중학교 선생님은 매우 단호하고 다소 거친 말투로 아이들을 대하셨는데 그간의 노고가 느껴지는 태도였다.


여하튼 10년 이상의 진로독서 경험을 바탕으로 나만의 방식대로 수업을 이끌어갔다. 그런데 중간 이후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중학교 학생임에도 단답식에 익숙해있어 5줄 미만의 글에만 반응했다. 더 어려운 것은 나의 발문을 잘 못 알아듣는 학생이 있어 3번씩 말하고 개인적으로 다니며 다시 설명했다. 어쨌거나 내 모든 진을 빼고 수업을 마무리했다.




며칠이 지나 우리 학교 4학년 아이들과 융합독서인 <안중근>에 대해 글쓰기를 하는데


1번> 이 글의 배경이 되는 일제강점기를 아는 대로 쓰세요. - 10줄

2번> 책을 읽고 새롭게 알게 된 것과 나의 감상을 넣어 독서 감상문을 완성하세요. -30줄


4학년이 된 지 얼마 안 된 아이들은 30줄을 보고 "엑!" 하며 놀라는 듯하다 나의 설명을 듣고는 "아, 저 정도는 쓸 수 있어요!" 하고 대답한다. 그러더니 교실 안 "또각또각"하는 연필소리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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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길게 쓰든 짧게 쓰든 크게 의미는 없으나, 이건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자신감 및 습관과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이 글을 쓰는 것에 별 부담이 없는 것은 1학년부터 지금까지 매주 글쓰기를 해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얘들아, 이만큼 쓰는 거 힘드니?" 하고 물으니 아주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아니요, 10줄 이상 쓰는 건 식은 죽 먹기예요!" 하며 크게 대답한다.


아구, 기특한 나의 아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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