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에서 살아남기
몽골로 가기 전부터 게르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오래전, 티베트를 여행하며 우연히 만났던 유목여인의 초청으로 들어간 게르의 첫인상이 참으로 신박했다. 그 좁은 공간에 침대도 있고 거실도 있고 부엌도 있는 신비스러운 비밀공간 같았다. 어두컴컴한 어둠 속에서도 그 여인은 티베트전통 밀크티인 짜이를 능숙하게 만들어 우리에게 대접해 주었었다. 그곳에서의 기억은 20년이 다 되도록 선명한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일주일 내내 게르에서 잘 예정이라 종류별로 체험할 수 있다는 기대가 컸다.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실내에 화장실도 샤워실도 구비되어 있다니 크게 불편할 것 같지 않았고 자연 속의 그림 같은 집을 상상하며 첫째 날 게르로 들어갔다.
첫째 게르는 적당한 규모에 3인실로 전기도 들어오는 곳이었다. 다만 화장실과 샤워장은 떨어져 있어 5분 정도 걸어야 했는데 그래도 바닥에 돌길이 있어 찾기 쉬웠다. 다만 이 게르는 바닥에 장판이 다 깔려있지 않아 까만 벌레를 잡느라 누군가는 희생해야 했다. 그럼에도 더운물이 잘 나와서 피곤의 묵은 때를 벗길 수 있었다. 또한 게르 뒤로 지는 일몰의 광경은 두고두고 기억날 명장면이었다.
둘째 게르는 큰 방으로 여유 있게 움직일 수 있고 우리 슈트케이스도 활짝 펼 수 있는 곳이었다. 바람 부는 속에서 쏟아지는 별을 볼 수 있는 들판도 있고 끝도 없이 펼쳐지는 광야를 덤으로 볼 수 있었다. 다만 화장실이 멀어 밤에 정신 차리지 않으면 쉽게 길을 잃을 수 있어 조심해야 했다. 물이 쫄쫄 나와 이 닦기도 쉽지 않고 샤워는 더더욱 어려웠다.
셋째 게르는 특별해 잊을 수 없다. 너무 작아 가방도 펼칠 수 없는 방이었는데 비가 오니 바닥이 물이 흥건해 그냥 천막만 쳐놓은 꼴이었다. 이보다 더 참기 어려운 건 침대 속 우글거리는 개미떼였다. 가져간 소독제를 열심히 뿌려가며 누울 수 있었다. 더구나 밤에 도착해 게르의 방향을 찾기가 어려웠고 바닥에 길도 없어 먼 곳에 있는 화장실 가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일이 생겼다. 밤에 두 명이 화장실을 가려고 나왔다가 길이 엇갈렸고 한 명이 길을 잃은 것이다. 어둠 속에 바람이 심해 모든 소리를 집어삼키고 있었기에 우리 모두는 새벽에 랜턴을 챙겨 나와 찾으러 나왔고 다행히 금세 찾을 수 있었다. 하마터면 큰 사고가 날뻔해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러다 보니 참고 참았다가 화장실을 갔고, 한 바가지의 물로 샤워와 이 닦기까지 해결하며 온몸으로 몽골 고비사막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들의 몸이 사그라져 갈 때쯤 다행히 도시로 들어가 그곳에 있는 호텔에 투숙했는데 이것이 신의 한 수였다. 아픈 사람들은 잠시 회복하는 시간이었고, 다른 이에겐 놓아가는 정신줄을 붙들게 하는 휴식의 시간이었다. 깨끗하고 따뜻한 물로 씻는 행위가 얼마나 인간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지 체험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고비여정의 마지막 게르는 진짜 우리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게 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좁은 게르에서 젖지 않은 공간을 찾아 가방을 얹어 놓기도 여의치 않았다. 전기가 없으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일찍 누웠는데 벌레가 얼굴 위로 날아들어 벌떡 일어나 약을 뿌리고 다시 눕고 다시 일어나 뿌리고를 반복해야 했다.
울란바토르로 넘어와서는 도시 속 아파트의 게스트 하우스를 빌려 지냈기에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러면서 게르에서의 고난이 옅어져 갔다. 망각은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라는 말처럼 불편은 잊어갔고 게르에서 보았던 별빛들과 바람의 소리와 비 내리는 광활한 대지와 게르에 부딪혀 오던 비들의 운율감이 새록새록 생각났다.
게르의 작은 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가히 장관이다. 바람에 휘날리는 고비사막, 끝도 없이 보이는 초록의 들판, 빗줄기에 대자연이 목을 축이는 모습, 세상의 어둠을 유일하게 밝혀주는 문크기만큼의 별빛들, 그리고 그 앞에 앉아 먹는 사발면까지 잊지 못할 추억들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자연을 해하지 않고 주신 그대로를 지키며 인간이 더불어 살기 위한 주거형태를 만들고 지켜낸 몽골인들의 지혜와 인내가 아름다웠다. 그러니 자연을 잃어버린 나라의 사람들이 이 나라로 날아와 자연의 힘을 회목하고 돌아가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