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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자의 전성시대 Aug 29. 2024

몽골에서 살아남기 Ⅳ

음식에서 살아남기

 예전 미얀마 여행에서 현지식을 먹은 뒤, 구토와 설사로 심하게 고생한 적이 있다. 그 이후로 자유여행이나 비전트립을 갈 경우, 라면포트와 누룽지, 간단한 밑반찬을 상비해 들고 다닌다. 인도에서 '수드라(카스트제도의 노예) 체험하기'처럼 여행했을 때 이 음식들을 아주 요긴하게 썼고, 별의별 일들을 겪으면서도 버티게 해 준 버팀목이 되었다. 


 이번에도 팀원들은 고비로 가는 일주일의 식량을 넉넉하게 종류별로 준비했다. 매실 장아찌를 비롯한 갖가지 장아찌, 볶은 김치, 진미채 볶음, 멸치 볶음 등등 슈트케이스의 반을 차지할 분량의 음식들을 꽁꽁 싸매 고비로 떠났다. 


 윽! 징기스칸 공항에서 출발해 한 시간 남짓했을 때, 처음으로 간 현지식당의 메뉴는 양만두였다. 양고기는 우리나라에서 냄새 안 나게 진짜 잘한다는 집에서 꼬치로만 바싹 구워 먹는 정도인데, 그다지 청결해 보이지 않는 집에서 손바닥 보다도 큰 납작한 양만두를 먹으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들어보니 이 음식은 '호쇼'로 몽골의 대표 음식 중 하나였다. 몇몇 분은 맛있다며 꽤 잘 드셨다. 

 거의 굶다시피 하고 첫날 숙소로 들어가 컵라면에 누룽지, 김치에 진미채를 놓고 일몰을 바라보며 낭만적으로 먹었다. 밀가루를 좋아하지 않는 나도 한 젓가락 먹고 라면국물을 마시는데 입에서 "캬!"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후로 일주일간 만난 음식은 양볶음밥 아니면 염소 볶음밥이었고 번갈아 가며 나오는 음식에 우리는 먹는 기대는 버리고, 가져간 음식들을 나누며 하루하루 살기 위해 먹어야 했다. 양갈비 타령을 하니 기사분이 휴게소 같은 곳으로 데려갔는데 현지인인 기사분도 그곳 음식은 싫어한다며 국수를 먹으니 말 다한 것이다. 

 이 기사분은 젊은 날에 한국 평택에서 일하다 한국어를 배워 몽골로 돌아와 여행사를 운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몽골음식보다 한국 음식을 더 좋아한다며 햇반에 김 싸 먹는 걸 좋아했고 라면과 믹스커피도 즐겨 먹었다. 참 아이러니하다. 


 우리네 음식은 지리적 환경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몽골도 당연히 양과 염소와 말을 흔히 키우니 이 동물들이 주식일 수밖에 없고, 척박한 땅에서 농사짓기가 어려우니 곡식이나 채소를 섭취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육식 위주의 음식으로 간단히 먹다 보니 우리나라처럼 다양한 음식으로 발전하기가 어려웠을 거라 추론 가능하다. 


 그럼에도 인간의 생명력은 끈질기다. 절대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곳에 게르가 한채 덜렁있는 경우를 보았다. 물도 전혀 없고 풀포기도 없는 곳에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그들의 삶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척박해 보이는 인생이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면 자연이 주는 선물에 감사하며 인간이 다스리는 자연이 아닌, 자연의 하나로서의 인간으로 겸허히 사는 풍요로운 인생이 담겨있다고 믿는다. 주신 음식에 자족하며 감사히 먹고 마시는 몽골인에게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나는 배워야 할 터이다. 

한국음식을 만들어 대접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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