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안, 마지막 이야기
센스쟁이 동료 선생님 덕분에 시안에서도 가장 중심지인 곳에 호텔을 잡았다. 가기 전부터 "선생님 뷰는 좋은데 많이 시끄러울 거예요. 바로 앞이 도로라서 차소리가 심하대요." 했다. "괜찮아요. 잠들면 잘 못 들어요. 그리고 거기까지 갔는데 뷰가 중요하죠."
공항에서 내려 40분 남짓 가니 4차선 도로 가운데 우리나라 동대문이나 남대문 같은 '종루'가 딱! 있었고 바로 옆이 우리의 호텔이었다. 낮이라 '종루' 근처엔 사람들과 장사하는 분들로 북적였고 신기한 건 중국여신 같은 사람들이 나래비로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종루'는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시간을 알리기 위해 1384년에 건립했다. 그 옆에 '고루'라는 성문도 보이는데, '종루'는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곳이고 '고루'는 성문이 닫힘을 알리는 곳이었다.
거리에서는 이곳 주식인 '대추밥'을 파는 리어카에서 나는 대추향내가 솔솔 났고, 여기저기서 들리는 성조 있는 말소리에 이질감이 들었다. 늦은 오후가 되면서 더욱 사람들은 많아졌고 짙은 화장을 한 중국 전통의상을 입은 여신들도 많아졌다. 이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심심한 재미가 있었다. 어두워지니 '종루'에 불이 켜지며 아주 멋들어진 거리가 나타났다.
낮보다 훨씬 더 화려한 듯하나 고즈넉하고, 거대한 듯하나 오밀조밀한 맛이 있었다. 더구나 호텔방의 창문은 '종루'와 '고루'와 함께 시내 풍경을 다 담아내고 있었다. 창틀이 옛날식이라 한기도 들어오고 교통상황 그대로의 소음이 들어왔으나 '종루'의 아름다운 빛깔이 추위와 소음을 모두 잊히게 만들었다.
새벽부터 움직여 너무 피곤했던 첫날, 커튼사이로 '종루'를 보며 잠들었다. 다음 날 일찍 일어나 커튼을 젖히니 어젯밤의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문화유산을 보며 잠들고 문화유산을 보며 잠에서 깨는 경험은 참으로 신기했다. 남대문 옆 코트야드 메리어트 호텔에서도 남대문을 비스듬히 보며 일어났지만 이렇게 까지 정통으로 보진 못했었다.
"선생님 덕분에 이 '종루'를 잘 때도, 깰 때도, 심지어 밥 먹을 때도 보고 있네요."
명나라 때부터 묵묵하게 그 자리를 지키던 '종루'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 자리를 지켜낼 것이다. 견학을 가서도, 심지어 쉬러 들어간 호텔방에서 조차도 인간의 휘몰아치던 역사 속에서 시간을 잊은 채 자리를 지켜내고 있는 문화유산의 위대함을 한껏 누리고 보고 느끼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