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책이 있다. 사강의 소설답게 난해하며 자칫 난잡해 보이는 주인공들과 감정들이 혼재해 있지만, 그 속에는 우리가 감추려 하는 인간 본연의 감정들이 잘 드러나 있고 읽다 보면 난잡해 보였던 주인공들의 매력 속에 그들을 이해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또한 이 책은 내용은 몰라도 제목만큼은 누구나 아는 책이기도 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은 몰라도 그 속의 대사인 "봄날의 곰"는 아는 것처럼 말이다.
"봄날의 곰"이 유명해진 데에는 동명의 영화가 있기 때문인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또한 동명의 드라마가 있어서 더 유명해지기도 했다. 이 드라마는 방학 때 몰아보기를 하고도 이후 여러 번 보고 싶은 장면을 돌려볼 만큼 흥미 있게 보았다. 박은빈과 김민재 배우의 잔잔한 연기와 더 잔잔한 스토리가 마음을 끌었는데 예술학도들의 사랑과 진로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다. 막장드라마로 마음이 어려우셨던 분들에게 강추하는데 촉촉한 단비연고로 불편했던 마음이 말랑말랑해질 것이다.
지난주 지인선생님 덕분에 롯데 콘서트홀에서 하는 <KBS교향악단 X 정명훈의 브람스 III, IV> 작품을 관람하고 왔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책은 잘 알고 있는데 정작 브람스는 모르는 무식이가 나였다. 그래서 가기 전 브람스가 누구인지, 1장부터 4장까지의 곡의 흐름이나 특징이 무엇인지 등 열심히 검색하며 빠르게 숙지했다. 사실 클래식음악은 학교에서 글 쓸 때 종종 틀어놓지만 그게 뭔지는 잘 모른다.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는 너무 좋아하는 곡이라 어디선가 나오면 아는 정도.
종일 일하고 1시간 40분에 걸쳐 콘서트홀에 도착해 헐레벌떡 밥을 먹고 자고 싶은 몸을 끌고 공연장에 앉았다. "나 보다 졸 거 같은데요?" "코만 안 골면 되죠." "혹시 골면 깨워주세요!" 하며 공연을 보기 시작했다. 3번은 웅장하게 시작했는데 애절한 오보에와 플루트 소리가 많이 들렸고 반복되는 선율에 나도 모르게 어깨를 죽 내밀고 집중해 들었다. 중간중간 끊어짐이 있었는데 언제 박수를 쳐야 할지 몰라 다른 사람들이 손뼉 칠 때를 기다렸고 어느새 1막 공연은 끝났다.
"와, 나 브람스 진짜 좋아하나 봐요! 졸리지도 않고 완전 집중해 들었어요." 인터미션 때는 나가지도 않고 앉아 기다렸고 4번도 전체소리와 악기 하나하나의 소리를 들어보려 눈도 어찌나 바쁘게 움직였는지 집에 올 때 눈이 뻑뻑하고 충혈되어 있었다. 베토벤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 만든 곡은 아름다웠고 악기의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내 귀에 각각의 악기소리가 들어와 내려앉았다. 여유 없는 마음에 소리가 들어와 한켠의 틈을 만들어 목구멍까지 꽉 찬 숨을 내려주는 듯했다.
많은 인파를 뚫고 차를 끌고 집에 오니 늦은 시간이었지만 감동은 쉬 사라지지 않았다. 이래서 고전은 힘이 있구나! 뭔지는 모르지만, 설명도 제대로 할 수 없지만 분명 내 마음에 무언가 들어왔음은 느꼈다. 조만간 책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꺼내 다시 읽어야겠다. 그리고 드라마도 다시 보기를 하고 싶어졌다. 비록 주인공이 브람스가 아니지만 난 브람스와 잘 맞는 사람인 거 같다.
누군가 나에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하고 물으면
"넵"하고 바로 대답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