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엄마가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47킬로의 작은 몸으로 힘들어하는 것을 보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러는 중에 한국으로 돌아온 딸이 아프기 시작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염증으로 피와 고름이 터져 나왔고 그 통증으로 매일 힘들어하는 딸을 보는 내 마음도 무너질 것 같았다. 가까스로 마음을 세우는 중에 타지에 있는 아이가 고열로 아프다는 연락이 왔다. 옆에 나도 없는데 아이는 열 때문에 상기된 얼굴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결국 이날 작디작은 내 마음은 무너졌고 무너진 마음을 어쩌지 못해 눈시울은 붉어졌으며, 내 입은 쉴 새 없이 기도만 할 뿐이었다. 이 날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또 울 수도 있다. 참으로 처절하게 일하고 시간을 보냈던 하루였다. 울 데가 없어 손을 꼭 쥐고, 눈을 부릅뜨며 버틴 하루였다. 입 밖으로 말하면 가까스로 참는 감정들이 넘실넘실 쏟아질까 봐 말수도 줄이던 하루였다.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왔던 마음들이 한꺼번에 무너졌던 무지막지한 하루였다.
그렇게 몇 개월을 병원에 다니고 검사하고 다시 치료받으며 몸을 치료했고, 나는 마음을 다잡고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에 최선을 다하며 무엇보다 쉬지 않고 기도했다.
모든 치료과정을 끝내고 엄마의 결과가 나오는 날, 긴장되는 마음에 손이 떨려 두 손을 맞잡았다. 더 긴장했을 엄마를 생각해 자꾸 딴 소리를 해가며 시간을 때웠다. 드디어 암세포가 많이 줄었다는 결과를 들었고 탄성을 질렀다. 그 순간 희한하게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기도하면서도 애가 타게 간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기에 입맛이 없어 잘 못 먹고, 먹기 싫었었다. 긴장감이 사라지니 그 자리에 허기가 몰려왔나 보다.
같은 날, 아이의 병원도 방문했다. 상태가 심각해 매일 병원을 다니는 중이었다. 처치실에 같이 들어가 자리에 앉았는데 커피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 쥐가 날 것 같았다. 마음으로 기도소리만 높아갈 때 선생님께서 "이 정도면 많이 좋아졌네요. 2~3일에 한 번 오고 이상태라면 얼마 안 있어 다 나을 거예요."하시는 거다. 몇 달 동안 "언제 나을지는 모르니 기다려보죠."라는 말만 듣다가 다 낫는다라는 말을 들으니 들고 있던 커피를 던지고 싶을 정도로 행복했다.
행복은 무슨 일이 생겨서 행복한 게 아니라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게 행복일 수도 있다. 이제 아이는 원래대로 돌아갈 날이 머지않았다. 아이도 엄마도 너무 신나서 우리는 생전에 안 하던 '로또'를 샀다. 그냥 우리가 얼마나 기쁜지 로또를 산다는 행위로 표출하고 싶었나 보다. 먹는 음식은 어찌나 맛있던지, 그 집 돈가스가 그리 맛있는 줄 미처 몰랐다.
집에 들어가 잠시 쉬려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남편 회사분인데 남편의 승진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시기 위해 전화를 주신 거다. 리액션이 거의 없는 나도 큰소리로 "와"라는 소리밖에 낼 수 없었다. 소식을 들은 엄마는 누워있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 거실 가운데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와 아이도 어안이 벙벙해 "우리 오늘 같은 날이 또 있을까?" 하며 기뻐했다. 이날은 아빠의 생신날이기도 해서 이 모든 소식이 아빠에게 가장 행복한 선물이 되었다.
절절하게 울며 무너진 날도 내 날이었고, 어찌할 바 모르게 행복해 춤추는 날도 내 날이었다. 인생은 참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검증하는 양,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다가와 바닥을 전전하게 하더니 어느 날은 발바닥이 바닥에서 떨어져 공중부양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게 인생이라고 한다면 어쩌겠는가? 그냥 살아야지. 무거우면 무거운 대로 울고, 가벼우면 가벼워서 춤추며 감사하며 그렇게 또 한날을 살아갈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