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보다Ⅰ
방학 중 10일의 여정으로 일본 비전트립을 떠났다. 후쿠오카에서 나가사키로, 운젠을 거쳐 다시 후쿠오카로, 국내선으로 하네다로 이동, 치바에서 하코네 갔다가 요코하마로, 다시 치바에서 도쿄로 갔다 돌아오는 알찬 일정이었다. 함께 가는 이들 모두 기대와 소망으로 기도하며 출발했다.
출발 전날까지 여름학교 특강으로 한국사를 가르쳤는데 하필 진도가 일제강점기여서 불타는 애국심으로 열심히 가르치다 일본을 가게 되니 내 안에 내적갈등이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일정을 소화하던 어느 날, 유난히 일본국기가 여기저기 보였으나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다. 그러다 일행이 "오늘이 815라 국기가 많이 보이네요. 일본은 오늘이 종전날이자, 패전날이라 안타깝고 슬픈 역사를 기념해 국기를 다는 날이랍니다."
아, 이거구나!
피해자와 가해자의 완연한 입장 차이! 815는 우리에겐 광복이자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아프지만 기쁨의 날, 이곳은 승승장구하던 전쟁에서 패망하고 항복을 선언하며 억울한 날. 이토 히로부미는 우리에게 두 번 죽여도 모자랄 나쁜 놈이지만 일본에서는 식민지를 이끈 엘리트이자 위인이다. 심지어 하코네 지역에 천황의 별장이 있는데 이곳 1층에 이토의 사진과 친필이 떡하니 전시되어 일본 국민들의 자랑이 되고 있다.
여기저기 펄럭이는 일본 국기를 보며 내 마음이 씁쓸한 건 어쩌지 못하겠다. 내 앞의 일본인들은 참 질서 있고 예의 바르며 상냥하기 그지없는데 역사 속 그들의 조상은 참... 나는 일본을 사랑하기까진 어렵겠다. 우리는 언제쯤이면 이 멀고도 험한 가시덤불을 넘어설 용기가 생길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8월 15일에 일본의 한복판에 한국인으로 서있었다. 태극기를 꽂는 나의 광복절에 그들에겐 슬픔이 되는 일장기가 휘날리는 모습을 목도하며 목으로 쓴 물이 넘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