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보다 Ⅱ
일본에서 수고하시는 선교사님들을 위로하고자 가는 여행이라 우리가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들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도쿄에 7년간 살던 선배언니가 준비모임을 하며 바다가 바로 앞에 펼쳐지는 목욕탕이 있는데 그 풍경이 끝내준다고 기회가 되면 가보자 했다. 나는 가능하다면 장어덮밥을 大자로 먹고 싶다고 소심하게 말했다.
후쿠오카 일정들을 소화하고 국내선으로 치바로 이동하던 날, 도착하니 어스름 저녁이 다 되어있었다. 종일 이동하느라 고된 우리들에게 5분만 가면 목욕탕이 있으니 가겠냐고 하셨다. 그러면서 그곳은 바다가 바로 보이는 곳으로 검은 물이 나오는 곳이라고 설명하셨다. 정적이 흘렀고 우리는 다 같은 생각을 했다. 준비모임을 하며 가보고 싶다고 말한 뒤 잊어버렸던 바람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화산의 영향으로 검은 물이 나오는 온천은 자그마했다. 그냥 동네 목욕탕 같은데 다른 게 있다면 주변이 다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왼쪽은 요코하마의 야경이, 오른쪽은 동경의 야경이 고스란히 비치고 있었다.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가진 목욕탕으로 들어갔고 지나가는 말로 했던 바다를 품은 목욕탕 물에 우리는 "아, 시원하다"하며 들어가 앉았다.
바로 바다가 보이고 지나가는 배도 보이고 수평선과 그 위의 하늘까지 목욕탕에서 보기엔 너무나 아까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눈과 바다 사이에 통창이 있었는데 예전에는 그 창도 없었단다. 그런데 누군가 배를 타고 망원경으로 안을 훔쳐보는 일이 생겼고 이후로 이 통창을 만들어 안에서는 바깥이 보이지만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도록 만들었단다. 세상 별 사람이 다 있다. 목욕탕을 나오면 목욕탕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병우유를 마시며 생각지 못한 소소한 행복을 누렸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공항으로 가는 날까지 장어덮밥은 먹지 못했다. 여러 곳에서 팔고 있었지만 너무 비싸서 그 많은 인원이 먹기에는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다들 나에게 못 먹여서 어쩌냐는데 "괜찮아, 다음에 먹으면 됩니다."하고 쿨하게 대답했다. 사실 딱 한번 먹고 싶은 마음에 내 돈으로 사 먹어볼까 했지만 함께 하는 여행에서 먹는 건 크게 중요하지 않기에 잊었다.
공항에서 짐을 부치고 들어가 비행기를 타기 전 아점을 먹기 위해 돌아다녔는데, 면세점 옆에 글쎄! 장어 덮밥집이 떡하니 있었고 심지어 아주 깨끗하고 조용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우리는 다들 소름 끼치는 기분으로 장어덮밥을 먹었고, 지나가는 말 한마디도 다 이루어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며 감사로 마무리했다. 혹자는 목욕탕이나 장어 덮밥이야 일본에 널려있어 가거나 먹는 게 뭐 대수냐고 하겠지만 그건 분명 우리에겐 선물이었다.
선물을 주러 간 거였는데 우리는 바리바리 선물을 받아왔다. 각자의 상황과 형편에 맞는 귀한 선물로 기쁘고 행복하고 때론 숙연한 감정을 느꼈고, 힘을 받아 돌아온 내 자리에서 힘이 필요한 이들에게 우리의 선물 보따리를 풀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