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딸에 대한 배려가 없다. 하필 나를 12월 31일에 낳아 태어나서 하루도 안 돼 2살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낮 12시 반에 태어나 1살이 되고 11시간이 흘러 2살이 된 나, 어릴 때는 키도 작고 몸집도 작아 늘 맨 앞에 서던 작고 느렸던 아이, 고등학교 때까지 밥도 엄마가 먹여주고 옷도 부모님이 사서 주는 옷만 입었던 센스도 없던 나, 혼자 사랑만 받고 커서 사회성도 부족해 관계의 어려움도 많았었다.
어수룩했던 내가 지금의 야무진, 아니 야무진 척하는 내가 되었다. 어릴 때는 내 생일이 동네잔치여서 사람들이 마당까지 북적였다. 어른들은 이때다 싶어 술파티에 신들이 나셨다. 다락방에 선물이 쌓이는 걸 확인하며 씩 웃던 내가 기억난다. 성장하며 송년회로 송별회로 신년회로 나의 생일은 희석되기도 했다. 심지어 다른 모임으로 내 생일은 패스당하기도 하고, 그다지 별거 없는 생일을 지내기도 했다.
2025년 12월 31일 나의 생일, 11시간이 흐르면 또 한 살을 먹는 오늘. 한해의 마지막이다. 어제저녁부터 엄마는 내가 생일미역국을 먹지 못할까 봐 성화다. 원래는 일찍 주무시는데 다 저녁에 전화해서 미역국을 누가 끓이느냐, 만일 없으면 나더러 끓여 먹으란다. 걱정 말라며 끊었는데 배시시 웃음이 난다. 이 나이에도 미역국 챙겨 먹으라는 우리 엄마, 내가 더 나이 들어도 똑같으실 것이다.
새벽 일찍 출근하는 남편님이 귓가에 생일축하한다고 말해서 잠결에 대답한 것 같다. 그렇게 새벽녘부터 하루가 시작되었다. 나보다 일찍 일어난 아이는 주방에서 뭔가를 하나보다. 연신 뚝딱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강아지 알콩이가 와서 내 잠을 깨웠고 나가보니 식탁에 미역국과 소고기와 나의 최애 호박전이 차려져 있었다. 이거면 된다. 맛있는 아침상을 받고 차까지 끓여 준비해 준 아이 덕분에 신나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바로 앞에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럭키비키"를 외치며 차에 올랐고 이것도 생일선물같이 느껴져 혼자 웃었다. 출근하면서 잠시 돌아가더라도 스타벅스에 들렀다. 그리고 좋아하는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오는데 세상 부러울 것 없는 기분이었다. 이리 호사를 부려도 되나 싶을 만큼 행복한 생일 아침이었다. 학교에 오니 아이들은 일찍도 와서 재잘거린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오늘 너무 좋다. 커피가 있고 음악이 있고 귀여운 너희들까지 있으니 말이야."
여기저기서 축하를 알리는 알림이 뜨는데 이미 나는 좋은 선물을 받았다. 삶에 자족할 줄 알고 주신 것에 감사하며, 누리는 것에 만족한다. 나의 나 된 것은 주의 은혜이니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어제와 똑같은 하루이지만 내 가족이 있음에, 내게 웃음을 주는 우리 학생들이 있기에,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터가 있기에, 넘치지만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있기에 감사하다.
한해의 마지막 날이라는 느낌보다 내 생일임이 더 각인되는 날, 곁의 사람들로 인해 아주 작지만 따스한 빛이 나는 날. 축하란 거대하고 성대하고 화려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다. 크고 거대한 다이아 보다 내 손에 꼭 맞는 불편하지 않은 은반지가 더 좋다고 하면 어리석다 할까? 명품가방을 가슴에 넣고 비를 맞으며 뛰는 어떤 이보다 가벼운 내 가방으로 머리가 젖지 않게 덮고 걷는 내가 좋다.
이제 보니 나는 뜨거운 거보다 따스한 걸 좋아하는구나. 화려한 거보다는 담백한 걸 좋아하는구나! 식탁 가득 차려진 한상보다는 좋아하는 음식 한 두 개가 차려진 걸 좋아하는구나! 시끌벅적한 축하보다는 간단한 인사정도가 편안하구나! 약속을 줄지어 잡아 즐기기보다는 조촐하게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 여유 있게 대화 나누는 게 편안하구나!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기보다는 한두 명의 사랑을 받는 게 더 좋은 사람이었구나!
편안한 생일을 보내고 있다. 다사다난했고 지금도 넘치는 일에 뒤덮여있지만 한해의 마지막을 편안하게 보내고 있으니 왠지 시끄럽던 올해가 지워지고 좋았던 올해였던 것 같다. 이렇다면 내년도 평화롭지 않겠는가! 상황이나 환경은 내가 만드는 것이니 내년에는 더욱 행복한 삶에 초점을 맞추고 군더더기를 빼보리라. 오늘 같은 날이 더 많아지도록 작은 것에 감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