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오빠가 있다. 내성적이고 차근차근 말하는 스타일로 꽤 고리타분하다. 게다가 집안에서 장남이라 권위적이고 손발이 빠른 편이 아니다. 그냥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적당한 나이의 꼰대 스타일이다.
그런 오빠가 추석 때 앞뒤 날짜를 빼서 파키스탄으로 봉사를 간다는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나는 대뜸 “장남인데 명절에 집을 비운다는 거야?”라고 물었고 오빠는 “그래서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빌고 가는 거야.”라고 한다. 직장도 쉬고, 명절도 쉬고, 게다가 그 위험하다는 파키스탄으로 봉사를 간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잘 다녀오라고, 기도하겠다는 말을 했지만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어느샌가 ‘~스탄’으로 끝나는 나라는 ‘위험한 나라’라는 편견을 갖고 보게 된다. 일주일을 꼬박 아침부터 밤까지 봉사를 하고 온 오빠는 홀쭉해져서 무사히 돌아왔다. 이 오빠가 이렇게 대단하게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다녀온 소감을 말하면서 같이 갔던 지인 중 한 명이 파키스탄에 있는 아프가니스탄 난민 아이들을 위해 천막학교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영어책과 학용품이 부족해 곤란한 지경이라 전해주었다. 이미 여러 번 학교 아이들과 필통 후원을 했던 나로서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었다. 대뜸 “내가 구해볼게. 영어책은 모르겠지만 학용품은 대략 50개 정도 구할 수 있을 거야.”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돌아와서 나는 가슴이 설레었다. 그들을 위해 내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 파키스탄에 가지 않아도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도울 길이 열렸으니 마음이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바로 다음날 나는 커다란 상자를 구해 앞에다 “깨끗한 필통을 모아주세요. 아프가니스탄 난민과 태국의 어린이들에게 전해 줄게요.”라고 대문짝만 하게 글씨를 붙였다. 역시나, 아이들은 관심을 보이고 질문하기 시작했다. 귀여운 아가들!
상자를 만든 다음 날, 6학년 한 아이는 말도 안 했는데 벌써 준비해 등교하자마자 나를 찾아와 1호 후원자가 되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우리 학교에서 책 나눔 행사를 하는데 학생들 대상이라 교사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부터 교사 대상으로도 나눔 행사를 하는데 영어 동화책이 꽤 많았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사서 선생님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선생님들이 가져간 뒤, 남은 영어책을 기부받기로 약속받았다. 마음이 들떠서 내 주위로 오는 학생들에게 이야기해 주었고 아이들은 “와~”하며 응원해 주었다. 4개의 쇼핑백에 다양한 영어책을 가득 담아 먼저 파키스탄으로 보냈다.
그리고 드디어 3~6학년 아이들 대상으로 목적에 대해 짧게 설명하고 집에서 쓰던 깨끗한 필기도구를 후원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들은 신나서 엄청난 질문을 퍼부어 댔다. 그만큼 큰 관심을 주었다. 아이들을 다음 날부터 줄을 서서 필기도구가 그득히 들은 필통을 가지고 기부했다. 일주일도 안 되어 100개가 넘는 필통이 모였다. 나름 엄청 정성스럽게 채워왔다. 한 아이는 막대사탕까지 꽉 눌러서 나눠주고 싶어 넣어왔다. 다른 아이는 자기가 아끼는 스티커와 마스킹 테이프까지 넣었다. 아기들도 좋은 일을 해야 한다는 걸 아는 모양이다.
이제 12월에 파키스탄으로 봉사 나가는 분을 통해 이 필통을 보낼 거다. 그곳에서 차마 상상도 못 할 피폐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의 다른 아가들에게 이 필통이 행복이 되고 기쁨이 되어주길 기대한다. 그 아이들이 하루라도 행복할 수 있는 기쁨이 씨앗이 되길 바라며, 이 일에 함께 해주는 우리 아가들부터 그곳에 나가 직접 발로 뛰며 봉사하고 있는 모든 분들까지 참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