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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 마라

by 박종희


바람이 시설거리며 익숙한 향을 실어 나른다. 후욱, 콧속을 채우는 향기는 봄 햇발을 받고 다복다복 올라온 쑥 냄새다. 집 근처 공원을 걷는데 둔덕에 구부리고 앉아 쑥을 뜯는 여인이 보인다. 아직은 새끼손가락만도 못한 작고 여린 쑥이 소쿠리에 담길 때마다 진한 향이 묻어난다.

미세먼지가 없어 쑥이 깨끗하다며 여인이 먼저 말을 붙인다. 근래에 이렇게 공기가 깨끗한 날은 처음이라고 여인은 한껏 달떠있다. 그러고 보니 하늘색이 달라졌다. 연두색 풀잎의 속살을 제대로 본 적이 언제였던가. 언덕에 다닥다닥 피어 있는 제비꽃의 색깔도 선명하다.

충남도와 가까운 우리 동네는 미세먼지가 심하다. 이사하고 한동안은 안개가 많은 도시인 줄 알았는데 그 희뿌연 것이 미세먼지였다. 항상 미세먼지를 염두에 두고 살다 보니 친정 동네 생각이 많이 난다.

학창 시절을 시멘트 공장 옆에서 살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마당에 시멘트 분진이 눈처럼 소복하게 내려 있었다. 어머니의 손길로 반질반질하던 장독 뚜껑은 시멘트 가루가 덮여 콘크리트가 될 지경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머리에 떨어진 분진을 털어주는 것이 흔한 일이었지만, 그땐 그것이 미세먼지인 줄 몰랐다. 누구도 먼지를 탓하지 않았고 오히려 시멘트 때문에 먹고 산다고 동네 어른들은 공장을 목숨처럼 여겼다.

4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친정어머니는 기침이 잦아졌다. 병원에서는 감기라고 했지만, 약을 먹으면 그때만 반짝해 만성기관지염을 안고 사셨다. 40년이 가깝도록 시멘트 먼지를 마시고 살았으니 왜 아니겠는가. 6년 전 폐부종으로 입원하신 어머니는 병원 문을 나오지 못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환경문제에 눈 뜬 마을 주민들이 공장에 소송을 시작했지만, 별반 달라지는 것은 없었던 성싶다.


타고나 체질 때문인지 나도 기관지가 약해 부모님 속을 무던히도 썩여드렸다. 황사와 미세먼지로 건강이 안 좋아지면 나만 아픈 줄 알았다. 마스크로 코와 입을 싸매고 미세먼지 때문에 창도 못 열고 바깥나들이도 못한다며 하늘을 원망했다. 우리만 숨 쉬기 어렵다고 투덜거렸지, 지구가 아플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오랜 세월 동안 우리는 하고 싶은 것 다하며 참, 이기적으로 살아온 것 같다. 나무도 가꾸지 않으면서 숲이 무성하지 않다고 애먼 소리를 하고. 자연의 질서를 무너뜨려 벌을 내쫓고도 사과 꽃이 피기를 기다리지 않았던가.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과 인근 주민들이 병들고 죽어갔지만 기계를 멈출 생각은 하지 않았다.


코로나가 사람들을 변하게 했다. 서둘러 차량 운행을 줄이고 기계를 멈추니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줄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작하고 나서 거리도 한산하다. 마스크를 쓰고 위생을 잘 지키니 주변 공기가 맑아졌다. 집에 있는 날이 늘면서 책을 읽고 꿈을 꾸며 나를 찾는 여유가 생겼다. 하루 24시간은 그대로인데 전보다 시간이 늘어난 것 같이 느껴지는 이 기분은 뭘까.

뭐니 뭐니 해도 코로나가 가져다준 가장 큰 선물은 집 밥인 것 같다. 야근과 회식, 모임으로 따로 먹던 밥을 얼굴 반찬을 마주하고 먹으니 집안 분위기도 좋아진 기분이다. 더러는 밥하는 것이 힘들다고 불평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 정도 고통 없이 공기가 좋아지길 기다린다면 욕심이지 싶다.

코로나로 잠시 일상이 멈추었지만, 코로나 이전의 시절을 그리워하며 소소한 것들의 귀함을 알았으니 그리 손해 보는 일만은 아닌 듯싶다. 코로나의 일침을 이제는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자연의 파괴로 벌들이 떠난 자리를 사람이 대신 인공 수분해주는 것처럼 생태계가 무너지면 바로 우리에게 고통이 찾아온다는 것을.

느리게 한 바퀴를 돌았는데 여인은 여전히 콧노래를 부르며 쑥을 뜯고 있다. 부근에 쑥을 다 절단 낼 작정인가 싶었는데 쑥 한 봉지를 내게 내민다. 된장 풀어 국 끓이면 한 끼는 먹을 것이라며 웃는 그녀의 미소가 연두색 순한 봄을 닮았다.

여인이 건네 준 쑥을 들고 다시 공원을 걷는다. 코로나가 들어먹은 줄 알았던 봄바람이 새살대며 지나간다. 초록의 새순이 나붓거리는 건강한 오늘을 사치스럽게 누리고 싶다.

흠, 마스크를 내리고 공기를 한껏 들이마신다. 우리가 변했으니 곧 코로나도 사라지고 마스크 벗고 살날도 오겠지. 아프지 마라! 네가 아프면 우리도 아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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