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

끽해야 겨우 하루를 버텨내는 일

by 법과사회

신체적 피로가 발 끝에서부터 서서히 육체를 훑어 목 뒷덜미까지 올라온다. 그 길이와 부피가 변하지 않는 뼈에 붙어, 근육은 이기적으로 몸집을 줄여 제 스스로의 악다구니에 고통을 잉태한다. 이는 처음엔 살짝 성가신 정도의 것이지만 그 지속력이 영원하고, 몸에는 수많은 근육이 존재하기에 이들이 서로 연합한다면, 나는 도저히 저항하지 못하고 단말마를 내지를 수밖에 없다.

인간의 삶 역시 이와 같다. 근본적으로 살아가는 일이란 수고스럽다. 가끔 아무 이유 없이 욕망을 충족할 수 있어, 질서와 안정감을 찬양할 때도 있지만, 사실 그 이외 대부분의 하루하루는 죽음과 나이 듦을 두려워하며 무척이나 애를 써야만 버텨낼 수 있어, 그저 시간의 내장 안에 존재할 뿐이다. 이와 같이 인간 실존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상징적'이고 '원형적' 이야기는 인류 역사에 이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나는 성경의 <창세기>를 생각한다.


17 And to the man he said,"Since you listened to your wife and ate from the tree whose fruit I commanded you not to eat, the ground is cursed because of you. All your life you will struggle to scratch a living from it.

18 It will grow thorns and thistles for you, though you will eat of its grains.

19 By the sweat of your brow will you have food to eat until you return to the ground from which you were made. For you were made from dust, and to dust you will return."

(Genesis 3:17-19, NLT)


기본적으로 삶이란 겨우 먹고사는 삶 struggle to scratch a living에 해당한다. 그토록 잘 살려고 애쓰고 노력하고 계획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더 나은 삶이 아니라 겨우 근근이 현상을 유지하는 일이다. 그나마 이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자기 욕망에만 충실하여 쉽고 거짓된 삶을 선택을 한다면, 그때는 단순 고통을 통과하는 데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어떤 희망과 선함도 존재하지 않아 스스로 그 무엇도 극복할 수 없는 '지옥'으로 자신을 밀어 넣게 된다. 그러므로 어쩌겠는가. 선하고 전지전능한 창조주가 우리에게 선사한 세계가 기본적으로 이런 원리로 구성되어 있다는데, 내가 무얼 할 수 있겠는가? '자유의지'라는 그 유명무실한 도구로 '애써' 신을 찬양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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