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혼돈이 그 사람을 집어삼킬 것이다. (중략) 혼돈은 이 세계에서 확실한 단 하나이며, 우리 모두를 지배하는 주인이다. 과학자인 나의 아버지는 일찍이 내게 '열역학 제2법칙'은 절대 벗어날 수 없다고 가르쳤다. (중략) 그는 거대한 '생명의 나무'의 형태를 밝혀냄으로써 지구의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을 하는 과학자, 더 정확히 말하면 분류학자였다. 책 내용 인용."
1) 질서와 혼돈
질서와 혼돈의 이원적 대립은 삶과 죽음, 창조와 소멸, 리비도와 타나토스, 빛과 어둠, 양과 음, 하늘과 땅 등의 또 다른 비유로 문학, 신학, 철학 등의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발견된다. 그렇다면 질서와 혼돈이란 무엇인가?
질서란 '인간이 예측하고 이해하며 알 수 있는 것'이다. 한 국가에서 통용되는 화폐, 다 풀고 난 뒤 바라보는 수학문제,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반복적으로 되풀이 되는 일 모두, 한 주가 끝난 뒤 또 다른 한 주가 온다는 사실, 시간표에 맞추어 진입하는 전철, 우리가 예의라고 부르는 특정한 행동양식, 매달 일정일에 통장으로 입금되는 월급, 그리고 매달 일정일에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카드값.
혼돈이란 '인간이 결코 예측할 수 없으며 이해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것'에 붙는 이름이다. 혼돈은 단 하나의 예상 가능한 사건을 넘어, 모든 생각과 상태로 끊임없이 그리고 자유롭게 확장된다. 소개팅에서 처음 만나는 상대, 언제 다른 사람이나 기계로 대체될지 모르는 직장에서의 위치, 다른 사람이 내게 품고 있는 은밀한 분노, 또는 내가 세상에 대하여 갖는 무의식적 욕망, 그리고 지구 온난화가 가져올 결과.
인간의 모든 순간은 질서와 혼돈이 함께 존재한다. 순간뿐만 아니라 삶의 과정도 이와 같다. 소개팅에서 처음 만나는 이성에 대하여 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혼돈 가운데 있지만, 상대가 나와 동시대를 살아온 한국인이고 비슷한 일을 한다면, 적어도 외계인을 알아가는 것만큼이나 혼돈 속에 있지는 않게 된다.
하나의 질서가 지나치게 강대해지면, 그 세계는 그 어떤 유연성과 자유도 존재하지 않게 되며, 그 질서는 곧 무너져내려 혼돈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정해져있지 않은 채 모든 것이 자유롭고 의미 있는 혼돈의 세계에서 잉태된 가능성은, 새롭고 유연한 또 하나의 자식을 낳는데, 이것이 바로 질서이다.
혼돈에서 질서가 태어나고, 질서는 다시 혼돈으로 돌아가, 이 순환의 고리 가운데서만 우주는 '의미'를 만들어 낸다.
2. 별에 머리를 담근 소년
"그 이름들은 내 입술에 얹힌 꿀과 같았다. (중략) 스트레스나 불안을 겪는 사람들이 수집에 의지해 고통을 달랜다며 비슷한 현상을 지적했다(책 내용 인용)."
1) 강박증
강박증은 보통 생각과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떠올리기 싫은 어떤 생각이나 감정을 회피하기 위하여 또는 막연한 불안함을 경험하기 싫어서, 자신을 안심하게 하는 어떤 행동을 집착적으로 하게 된다. 강박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자신이 피하려고 발버둥치는 그 고통스러운 것을 바라보고 대면하여 이야기해야 하다. 질서라 믿고 있는 경직된 행동패턴이 사실은 혼돈에 불과한 것임을 깨닫고, 혼돈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혼란 속에서 온전히 존재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질서를 잉태할 수 있다.
3. 어느 섬의 선지자
"그러나 눈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감각기관이어서 사람에 따라 똑같은 것도 다르게 보이기 마련이다. (중략) 보이는 것에 담긴 보이지 않는 것의 의미를."
1) 인식론
인식론은 존재론, 의미론과 더불어 철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역 중 하나이다. 인식론이란 말 그대로 '한 인간이 어떻게 하나의 사물 또는 현상을 인식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과 답에 관한 영역이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인간의 눈은 가시광선만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동물들은 우리가 보는 것 이상의 빛(자외선과 적외선 등)을 본다. 그렇다면 하나의 질문을 던져보자. '인간과 어떤 동물은 같은 사과를 보고 있는 걸까? 이들이 보는 사과의 모습은 단 하나에 불과할까? 인간이 바라보는 사과의 모습만이 실제 사과의 모습이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이 자주하는 또다른 실수에 관하여 말해보자. 철수와 영철이는 영희와 만나서 맛있는 음식을 먹기로 했다. 하지만 영희는 그날 연락도 없이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철수와 영철이는 예약해둔 식당에 가서 둘이 시간을 보냈다. 이 때, 철수와 영철이가 경험한 현상은 동일하다. 영희가 연락 없이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은 것. 하지만 이 둘은 서로 다른 생각과 행동을 했다. 철수는 '영희가 무슨 일이 있나보다. 걱정되긴 하지만, 영철이와 이렇게 시간을 보낸 적이 별로 없었으니, 오늘 영철이를 알아갈 좋은 기회다.'라고 생각했고, 즐거운 감정을 느꼈으며, 그렇게 행동했다. 영철이는 '영희가 나를 싫어하나봐. 철수와 대화해본 적이 별로 없는데, 어색하고 짜증난다. 이 분위기를 어떻게 해야하나? 영희는 자기가 이 모임을 진행해놓고 도대체 뭐하는 짓이야.'라고 생각했으며, 짜증과 분노를 느끼고, 이를 감추기 위해 과하게 기쁜 척 연기를 했다.
철수와 영철이는 같은 현상을 통과했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해석을 했다. 그 결과 나타나는 감정과 행동은 완전히 달랐고, 결국 다른 경험을 얻었다. 그렇다면 과연 객관적인 하나의 사건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인식론에서 묻는 것이다.
4. 신이라는 막간극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 (중략) '우리 모두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중략) 의미는 없어!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 (중략) 혼돈은 우리의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다. 우리의 꿈, 우리의 의도, 우리의 가장 고결한 행동도. 절대 잊지 마라. 너한테는 네가 아무리 특별하게 느껴지더라도 너는 한 마리 개미와 전혀 다를 게 없다는 걸."
1) 알베르 카뮈1
카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조리는 인간의 호소와 세계의 어처구니없는 침묵 사이의 대비對比에서 생겨난다(시지프스의 신화의 부조리한 벽 중)."
노자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않아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여기고, 성인은 어질지 않아 백성을 짚으로 만든 개로 여긴다(도덕경, 노자)
다윈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
카뮈에 따르면 세계는 '원래' 비합리적이다. 여기에서 비합리라는 단어는 '인간 따위는 신경쓰지 않음'이라는 뜻에 가깝다. 자신의 부모에게 학대 당하고, 산불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가난을 대물림 받고, 장애를 갖고 태어나 평생을 차별 받고, 지진으로 인해 수만 명의 사람이 죽고, 전쟁 때문에 수천만명의 사람이 학살 당해도, 거기에 세계는 그 어떤 '합리적'인 답을 내놓지 못한다. 왜냐하면 세계는 애초부터 인간에게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무의미한 것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 존재다. 어떤 일이 발생하면 반드시 그 이유를 찾고 이해해야만 한다. 내가 어느날 초록불에 신호를 건너다가 신호를 무시하고 돌진한 트럭에 치여서 하반신이 불구가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국가의 교통체계가 잘못되었다거나 도로를 잘못 만들었다거나, 악인에게 희생당했다거나, 뭐 여러가지 이유를 붙여 의미를 만들 순 있겠지만,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이런 일엔 아무 관심 없다.
그래서 삶의 고통을 '합리적'인 방식으로 이해하려는 인간과 애초부터 '비합리적'인 세상 사이에는 반드시 그 간극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카뮈는 이를 '부조리'라고 불렀다.
5. 꼬리를 좇다
"부모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편애라는 큰 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1) '절대'
저자는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절제하고, 최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증거에 기반하여 글을 작성한 것처럼 보인다.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을지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런데 가끔 저자의 감정이 드러나는 때가 있다. 특히 위에 적은 이 대목.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편애'. 그녀는 어떤 유년 시절을 경험했던 걸까. 어떤 상처를 받았기에, 편애라는 단어에 '절대 하지 말아야 할'이라는 관형어를 붙였을까?
대부분의 심리치료 이론은 어린 시절의 경험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부모와 맺는 그 관계가 성인이 되어서도 나타나며, 프로이트는 이를 반복강박이라 불렀다. 아무리 급진적이고 현대적인 심리치료 이론이라 할지라도 어린 시절이 현재에 미치는 영향을 완전히 부인하진 않는다. 그만큼 어린 시절의 심리적 역동이 한 인간의 생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어떤 면에서는 '운명'처럼 느껴질 정도로.
6. 유리단지에 담긴 기원
"철학에는 어떤 것들이 이름을 얻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사상이 있다. (중략)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 개념은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실재'가 된다. (중략) 그런데 이 사상에 따르면, 이름이 존재하기 전까지 개념들은 대체로 불활성 상태에 있다고 한다. (중략) 이 세계에는 실재인 것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이름을 붙여주지 않아도 실재인 것들이."
1) 비트겐슈타인
룰루 밀러가 말한 '이름을 얻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사상'은 언어철학 또는 언어 구성주의일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존재'나 '실재'의 의미는 인간의 의식에서 경험되는 인식의 영역에 해당된다. 실제로 세계에 무언가가 있거나 없음을 기준으로 '존재'나 '실재' 논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그녀는 그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처럼 같은 단어를 두고서도 인간은 수없이 다른 의미를 생산해내고 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 이런 언어 사용의 혼란에 대하여 비트겐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말해질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해질 수 있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논리철학논고, 비트겐슈타인)."
간단히 말해 '말해질 수 있는 것'은 누가 봐도 객관적으로 다 같은 답을 할 수 있는 사물에 대한 것이다. 사과가 탁자 위에 있다거나 철수는 키가 180cm이다와 같은 명제들은 누구에게나 같은 의미를 전달한다. 하지만 사과가 크다라거나 철수는 잘생겼다와 같은 문장들은 사람에 따라 다른 의미를 전달한다. 누군가에게 이 사과는 작을 수도 있고 클 수도 있으며 그 사이 어딘가의 크기일 수도 있다. 또한 철수를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으며 그 사이 어딘가의 평가를 내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같은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모두에게 같은 의미를 전달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말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사랑과 증오, 선함과 악함, 예의와 예의 아님, 추움과 더움, 본질과 존재 등의 단어는 이에 대응하는 사물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책이나 돈처럼 보고 만질 수 있는 게 아닌 개념들이다. 그러므로 이 단어들은 '말할 수 없는 것'이고 이에 대한 논의 자체가 '무의미'한 짓이라는 것이다.
"철학적 문제들에 관해 씌어 있는 대부분의 명제와 질문은 거짓은 아니지만 무의미하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이런 종류의 물음들에 결코 대답할 수 없고, 다만 그것들의 무의미성을 확립할 수 있을 뿐이다(논리철학논고, 비트겐슈타인)"
7. 파괴되지 않는 것
"그는 갈수록 더욱더 내 아버지와 비슷한 소리를 했다.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은 매번 숨 쉴 때마다 자신의 무의미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거기서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이다. (중략)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다."
1) 알베르 카뮈2
위 3-1)에 적은 카뮈의 이야기를 이어서 해보자. 그렇다면 카뮈는 세상의 비합리성과 이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부조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을까?
여기에서 시지프 이야기를 간단하게 해보자. 시지프는 신에게 집채만한 바위를 산 꼭대기로 옮기는 형벌을 받는다. 그런데 산 꼭대기는 뾰족해서 그 바위를 둘 공간이 없다. 시지프가 아무리 효율적인 방법을 써도 또는 땀을 뻘뻘 흘려가며 몸을 써도 바위는 계속해서 맞은편 바닥으로 떨어질 뿐이다. 이 무의미한 짓거리를 평생에 걸쳐 해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행복할 수 있을까? 그런데 카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지프의 말 없는 모든 기쁨이 거기에 있다. 그의 운명은 곧 그의 것이다. 그의 바위는 그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조리한 인간은 자기의 고통을 바라볼 때, 모든 우상을 침묵하게 한다. (중략) 부조리한 인간은 긍정적으로 대답하며, 그의 노력은 끝이 없을 것이다. 개인적인 운명은 있지만, 그 운명이 숙명적이고 경멸해야 할 것으로 판단되는 것이 있을 뿐, 더 우월하거나 더 열등한 운명은 없는 것이다. (중략) 나는 시지프를 산기슭에 내버려둔다! 이 돌의 부스러기 하나하나, 어둠으로 가득 찬 산의 금속적인 빛 하나하나가 그에게는 오직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산꼭대기로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사람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해보아야 한다(시지프의 신화, 알베르 카뮈)."
8. 기만에 대해서
"그가 자신에게 속삭인 건 거짓말이었다."
1) 낙관주의에 대하여
"백일몽과 낙관주의로 지금의 뇌내 쾌락회로만 잠시 자극하고는, 지금의 문제를 애써 못 본체하고 미루기를 시전하다 또다시 자괴감에 빠지는 악순환에 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허지원)"
'다 잘될거야!' 내가 가장 혐오하는 문장 중 하나다. 이 말은 내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어려움과 괴로움을 스스로 해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저 위대한 그 무언가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라는 말에 불과하다. 인간이라면, 자기 삶의 주인이라면, 여태 스스로 선택한 결과로 현재의 문재가 초래되었다면, 이를 해결 하려는 노력과 발버둥은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만 인간은 비로소 성장을 시작하며, 더 해봐야겠다는 소망을 품게 된다. 낙관주의는 사실상 고통의 회피에 불과하다. 미래를 바꾸고 싶다면, 그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지금 내가 하는 생각과 행동을 '원하는 미래의 모습'에 맞게 바꿀 것.
10. 진정한 공포의 근간
"이 나라에서 우생학 이데올로기는 결코 죽지 않았다."
1) 우리도 조던과 다르지 않다.
우생학의 핵심은 '우수한' 유전자를 보존 및 재생식하고, '열등한' 유전자를 제거하는 것에 있다. 그렇다면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당신이 자녀를 선택할 수 있다면, 지능지수가 130인 아이와 70인 아이 중 누구를 택하고 싶은가? 결혼 상대를 선택할 수 있다면, 누가봐도 좋은 몸매에 성격이 좋고 재력이 있는 사람과 몸매도 별로인데다가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서 성격도 별로고 하루 벌어 하루 겨우 살아가는 사람 중에 누구와 결혼하고 싶은가?
인간이 하나의 종으로서 번성하기 이전부터 자연계에는 지위가 존재했고, 단세포 생물이 다세포 생물로 진화하기 그 이전부터 자연에는 암수가 존재했다. 생물이 더 높은 지위를 바라보고 추구하는 것, 암수가 나뉘어 있는 것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너무 특별하게 여긴 나머지, 자신이 지구에 존재하는 하나의 동물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망각하고, 신의 자리에 앉으려하는 행위 그것이 바로 파멸을 불러온다.
우생학은 그 자체로 어떤 의미도 없다. 폭력도 그 자체로는 어떤 의미도 없다. 사랑도 그 자체로는 어떤 의미도 없다. 우울, 불안, 수치심도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진짜 문제는 자기 안에 악이 살아 숨쉰다는 걸 망각할 때 발생한다.
12. 민들레
"우리는 중요해요. 우리는 중요하다고요!"
1) 룰루 밀러1
정말 슬픈 말이지만, 밀러를 학대한 건 자기 자신이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중요하다는 말을 그렇게나 듣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중요하다는 믿음을 갖는 게 정말 중요한 걸까? 내가 가치 없다는 말을 누군가에게서 듣는다면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 되는 건가? 누군가 날 칭찬한다면 난 중요한 인간이 되는 건가? 비난 받을 때의 나와 칭찬 받을 때의 나는 물리적으로 볼 때 사실 똑같은 존재다. 왜 룰루 밀러는 그토록 타인의 인정과 수용이 필요했던 걸까?
13. 데우스 엑스 마키나
"그가 역경의 시간이 닥쳐올 때마다 의지했던 범주, 그기 명료히 보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그 범주는 결코, 단 한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1) 존재에 대하여
사실 위 인용문의 논리대로 따져보면 인간, 사랑, 예의, 도덕, 식물, 전선, 동물, 구름, 바다 등도 결코 단 한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애초에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 존재할 뿐이지.
14. 에필로그
"나는 내 인생을 계속 살아가야 했고, 혼돈 속으로 다시 들어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지켜봐야 했다. (중략) 그러나 이건 내가 원하는 인생이다. 나는 범주를 부수고 나왔다. (중략)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무한한 가능성의 장소를 보았다. 모든 범주는 상상의 산물이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느낌이었다. (중략)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이면인 삶 부패의 이면인 성장. (중략) 그것을 더 명료히 보게 해준 요령을 절대 놓치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것이다."
1) 룰루 밀러2
룰루 밀러는 자신의 혼돈에 직면했고, 그 안에 자신을 던졌으며, 어둠 가운데 절망하다가, 이윽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책임지려는 마음으로, 자신만의 질서를 순간순간 창조하게 되었다. 마치 행복한 시지프스처럼.
15. 감상평
1) 정말 오랜만에 좋은 책을 읽었다. 너무나 즐겁고 슬펐다. 룰루 밀러는 자신의 그림자를 외면하지 않고, 자기 마음의 요구를 회피하지 않고, 그 어색하고 조악하고 추하고 어두운 자기 자신을 찾으려 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세상엔 재밌는 게 너무나 많고, 해야할 일도 너무 많다. 자기 마음이 전하는 목소리를 외면해도 충분히 많은 것들이 주어지는 세상이다.
난 룰루 밀러를 존경하게 되었다. 그녀의 글쓰기 방식이나 고백을 바탕으로 짐작컨대, 아마 그녀는 상당히 신경증적인 성격인 것 같다. 새로운 자극을 탐구하면서도 동시에 그 위험을 회피하려는 본능적인 기질은 한 인간으로 하여금 쉽게 지치고 예민해지는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도록 한다. 하지만 그녀는 주어진 자신의 운명을 탓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의 마음에 묻고, 타인에게 묻고, 세상에 물고, 신에게 물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녀의 두려움을 거뭐진 그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2) 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입장을 이해한다. 그리고 룰루 밀러의 입장도 이해한다. 난 그들 각자가 취하는 자세가 모두 ‘자연적’인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하기도 전부터 지위와 권력에 따라 상위 계급에 있는 생물체는 더 많은 것들을 누리고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승자에게 자신의 힘 일부를 이양함으로써, 자신과 종족을 위하여 평화롭게 지내고 싶은 마음을 전하려는 구성원의 행동 역시 본능의 영역이었다. 그 후에 지구가 잉태한 인간 역시 사회적 지위와 계급에 대한 정보를 ‘자연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해도, 인간의 뇌를 살펴보면, 그렇게 작동한다.
하지만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해도, 꼭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자연적’인 것은 비합리적이며 ‘인간적’인 것과 서로 부조리의 관계에 있다. 우리가 만약에 전쟁이 일상이었던 대부분의 과거 인류사에 존재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인간의 삶은 전혀 ‘자연적’이지 않다. 낮과 밤이 바뀌고, 걷지 않으며, 사냥하지 않고, 공동체를 이루려 하지도 않는다. 모든 것이 자연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으로 ‘인간적’인 것을 향해 가는 중인데, 유독 생물학적 본능을 운운하며 계급 구조와 지위를 이해할 필요가 있을까?
난 한 인간 안에 타인 위에 올라서고 싶은 욕망만큼, 자신과 타인을 사랑하고 이해하며 아끼려는 욕망 역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약자를 보면 가슴이 아프고, 착취 당하는 자들을 보면 화가 난다. 적어도 이 좋은 시대를 살아가며, 타인과 세상에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면, 나도 좋은 것을 뱉어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