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떠 내려가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지만 잠시 깜빡이는 무언가를 볼 수 있을 따름이다. 이는 마치 눈을 감고 눈꺼풀을 통해 들어오는 어렴풋한 형상을 보고 강남 한복판을 걷는 느낌이다. 가끔 누군가 고함치는 소리가 들리고, 군중 속에서 부산히 길을 걷는 여러 발자국 소리만 들릴 뿐이다. '나는 누구인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도저히 알 수 없다. 무언가 무서운 것이 내 앞에 있는지 뒤에 있는지 위에 있는지 아니면 발아래 있는지, 아니 그것이 무서운 것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나는 지금 혼돈 위에 서있다. 아니 혼돈에 담겨 있다고 해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 잠시 움직이는 걸 멈춰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저 여기 주저앉아, 이러한 것과 저러한 것을 바라보고 듣고 만져야 하는 침전의 시기일 수 있다. 가만 보니 나는 한 곳에만 있는 게 아니다. 여기저기 조각난 채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조각들은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다. 온전한 하나로 다시 존재해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 왁자지껄 침묵해야 한다. 마치 내 안에 장이라도 열린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