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나 어디서나 일을 할 때 본인이 항상 공감하는 말이 있다. 그 말은 일이 힘든 건 괜찮으나 사람이 힘든 것은 못 참는다는 말이다. 특히 이 말은 공무원이 되어 비록 2년이지만 순간순간 느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기원은 이렇다. 아무리 힘든 일이 아무리 많은 일이 있어도 언론에서 말하는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곳이기에 야근을 해서 일을 해내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아침에 조금만 일찍 와서 저녁에 조금 늦게 가서 아니 늦게 가든 휴일에 퇴근을 하든 주변에 좋은 사람들 함께 해주는 사람들만 있어도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옆에서 도와주고 옆에서 알려주고 옆에서 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말해주는 동료가 있는데 뭔들 문제이겠는가. 현재 그 마음을 너무도 심히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혹자는 말한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라고 말이다. 인정한다. 회사는 어쩌면 피 튀기는 전쟁터라고 할 수도 있겠다. 미생을 보면 말이다. 임시완이 말하더라. 전쟁터라고.
그런데 그것이 과연 과연 회사 입장에서도 사회 전반적인 입장에서도 바람직한 것인 것인가에 관해서는 의문이다. 본인이 편하자고 남들에게 위계질서, 직급 등을 언급하며 임무를 떠맡기는 것. 본인이 편하자고 감정이 가는 데로 본인보다 직급이 낮은 직원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취급하는 것. 본인이 원하는 기준치에 맞지 않는다고 폭언을 하여 여러 직원들이 불면증에 약을 먹도록 하는 행위 등. 지역 감정을 앞세우는 것. 뭐 이런 것. 과거에는 통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과연 시대가 바뀐 현재에 그것이 통할지는 의문이다. 업무의 속도를 보았을 때는 그렇게 아래로는 찍어 누르고 갈구는 행위를 하며 위로는 각종 호의를 베풀는 행위가 빠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그렇게 해서는 이제 MZ세대는 그 부담을 감수하고 버틸까. 아니. 뉴스를 보라. 그들은 고개를 돌리고 있다. 제발 그 징조가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아니. 고생을 왜 사서해. 고생을 하면 노동법에따라 정당한 페이를 받아야지라고 말하는 것이 요즘 젊은이들이다. 미련한 고생, 쥐 꼬리만 한 월급 받고 본인보다 훨씬 페이를 많이 받는 상사에게 빵, 간식 등 마음에도 없는 것들 대접하기. 짜증받이. 상급자의 무능함으로 하부 직원의 미련한 야근. 미래를 위해 도제식 교육을 받는 사회초년생들의 열정페이로 포장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본인은 이후에 마음이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그런 상사가 되고 싶지 않다. 많이 알고 성장할 수 있는 사회생활 말 그대로 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직장인 동료가 되어주는 상사가 되고 싶다. 사람인을 적어보면 서로 기대어 있다. 혼자서 서 있는 'ㅣ'자 형세가 아니라 누군가를 짓밟고 있는 'ㅗ'자 형세가 아니라 기대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간은 사이간이다. 본인은 그런 상사를 만나지 못 했지만 본인은 후에 그러고 싶지 않다. 작은 징조들이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는 데 우물 안에만 갇혀 눈을 닫고 살지 않을 것이다.
위 글과 관련되지는 않지만 번외로 국가직 공무원이 내게 맞느냐는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지금 현재 좋다고 대답을 할 것이다. 좋은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뿌듯함이 있다. 어떤 영리가 아닌 아무리 적은 것이라도 국민의 세금으로 무엇인가 공리를 위한 일을 하며 대기업보다 워라벨이 있으며 워라벨이 있는 만큼의 적당한(뭐 좀, 아니 많이 작다고 생각하지만) 월급을 받는 것. 그것이 상당히 뿌듯하다. 또한 문제 상황이 닥쳤을 때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근무하면 함께 협동하여 그 일을 해결해나가는 것, 또 그것이 공리를 위한 것임을 생각하면 그 뿌듯함은 정말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을 생각하자면 돈을 벌고자하면 값비싼 옷과 물건들로 치장하고 값비싼 집에서 살며 값비싼 취미를 가지고자 한다면 고개가 여전히 갸우뚱하기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