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시 택시를 탔다. 빠르게 집에 가서 쉬고 싶을 때 택시를 부르곤 한다. 그렇게 도착한 그랜저 한 대, 쏘나타가 아니고 그랜저가 왔구나! ‘너구리’에서 다시마 2개를 발견한 기분이랄까. 뒷좌석에 냉큼 엉덩이를 올려둔다. 기사는 60대 중반으로 보였다. 보라색 바탕에 흰 줄무늬가 옅게 그어진 스웨터를 입고 있었는데, 백발과 잘 어울리더라. ‘어서 오십시오. 원안경으로 모시면 될까요?’, 차분하게 건넨 그의 온화한 첫마디. 사람에 이리저리 치여 푸석해진 마음을 달래주는 단비였달까, 이 차에 조금 더 오래 머물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했기에 “네, 우면산 터널 말고 사당 쪽으로 가주세요.” 했다.
그는 자신을 대기업 임원 출신이라 소개했다. 보통 택시 기사들을 만나면, “우리 아들이 이번에 어디 회사에 붙었어요.”, “딸들이 아빠 고생한다고 해외여행을 보내준다네?”라는 식의 자랑이 이어졌었는데, 이번에도 그런 건가 싶었다. 내 반응에 만족하지 못했는지, 기사는 다시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제가요, 2년인가를 퇴직하고 놀았어요. 처음엔 좋았죠, 산도 가고, 해외여행도 가고, 그런데 놀다 보니까 이거 계속 못 놀겠더라고요.”, 아니 노는 게 제일 좋다는 말도 못 들어보셨나, 나는 질펀하게 놀 준비가 되어 있는데. “그래서 택시를 한 거예요. 저는 일을 하면서 성취를 느끼거든요. 그 일이 뭐가 됐던 요즘에는 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요.”
이 거룩한 택시는 힘차게 내달렸다. 인덕원역에 다다르자,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어떻게 들으실지는 모르겠지만, 택시 기사는 참 매력적인 직업인 것 같아요. 짧은 시간이지만, 각기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 쉽지 않잖아요.” 움푹 파인 뒷좌석의 시트가 다시 평평해졌다. 택시비가 더 저렴했다면, 모든 택시 기사가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입에서 단내가 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작은 생각이 그 뒷자리를 채운 것이다.
2. 붕어빵을 먹고 싶었다. 날씨도 부쩍 차가워졌으니, 이제 따뜻하게 덥혀줄 차례가 온 것이다. 그 맛도 맛이지만, 붕어빵을 만드는 동안 피어오르는 김을 보면 무척 설렌다. 침을 질질 흘리면서 기다리다가, 막 만들어진 붕어빵 한 입을 베어 물자 입안 가득 퍼지는 슈크림과 벗겨지는 입천장. 입 안을 새롭게 단장하는 것만 같다.
‘거북이 호두과자’, 남부터미널 앞에 자리한 작은 가게다. 호두과자를 팔아야 하지만 주인장 마음대로 붕어빵을 파는 독특한 곳이다. 주인장이 날 보고 아는 척을 한다. “어, 또 오셨네. 오늘도 슈크림이죠? 오늘은 천 원만 내세요.” 2개에 2천 원인 붕어빵을 반값으로 주다니, 역시 독특하군. 차마 천 원을 낼 수 없었던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2천 원을 입금했다. ‘당신이 돈을 벌어야 내게 이 붕어빵을 계속 줄 수 있지 않겠냐 이 말이요.’, 그도 내 마음을 알았는지 입금 알림음이 들리자, 멋쩍은 미소와 함께 갓 구워낸 붕어빵 2마리를 건넸다.
붕어빵이 황금색으로 익어가는 동안, 그가 했던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제가요, 봉투에 붕어빵을 2마리씩 담는 이유가 있어요. 그래야 최상의 맛을 유지할 수 있거든요. 봉투 안에 붕어빵을 많이 담으면 다 엉겨 붙어서 맛없어.” 이른바 ‘붕어빵 지론’이겠다. 신나서 붕어빵을 굽는 저 모습, 그는 붕어빵을 열혈이 사랑하는구나. 얼마나 애정하면 저런 지론을 갖고 있을까, 그의 하루는 붕어빵 속 슈크림처럼 가득 차 있겠구나. 아저씨가 맞았다. 맛이 좋다. 겉은 아주 바삭하고 속은 슈크림으로 가득했다. 와플을 슈크림에 찍어 먹는 기분이랄까. 가을과 겨울의 사이, 내일 다시 와 올해의 가을을 닫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