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재미는 기획하는 재미-
언제나 가방에 넣고 다니는 노트가 있다. 매년 한 해에 두 권 정도의 노트를 사용한다. 생각을 끄적여 놓은 노트들을 쭉 훑어보면 유독 생각이 많았던 해가 있다. 나에게는 2023년이 그러한 해였다. 강의를 많이 나갔다. 관외에서 요청이 들어와도 피 같은 연차를 소진하며 무조건 달려갔다. 지난해에는 주 40시간 근무의 본업을 사수하면서도 대학의 특강이나 어린이집의 교사교육과 부모교육 등을 합쳐 30회 이상의 강의와 발표를 했었다.
강의와 발표가 재미있었던 것은 내가 기획한 것이 어떠한 결과를 내는지 확인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똑같은 주제의 강의 요청이 들어와도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면서 강의를 기획하는 일을 즐겼다. 교류분석이라는 이론을 통제변인으로 두고 강의 내용과 순서, 방법 등은 조작변인으로 두어, 성인 학습자의 '정서적 성장'이라는 종속변인을 확인하는데 미쳐있었다. 원장이 되기 전 대학에서 시간 강의를 할 때에도 강단에 서는 순간보다는 강의를 준비하는 시간이 재미있었다. 시간 강의 두 학기 차에 대학에서 우수 강의상을, 그것도 시간 강사로서는 유래 없이 수상을 한 나는 언변이 좋은 것도 강의력이 좋았던 것도 아니었다. 어설펐고 완급조절이 안되었고 시간조절도 못했다. 하지만 강의 계획이 좋았다. 내가 수강생이라 생각해도 만족할만했다.
강의를 기획해 내던 그 훈련이 책을 쓸 때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아직 출판 한 권 하지 못한 내가 책을 기획하는 것에 자신이 있다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매우 우습고 부끄럽지만, 스스로 나의 글을 평가하자면 글을 써 내려가는 능력보다는 기획력이 좋다는 평가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해보는 말이다. 글은 사실, 읽다 보면 좀 건방지다는 느낌이 종종 든다 :)
브런치 북에 발행한 [원장 엄마의 사십춘기]는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해 쓴 자전적 에세이라서 기획이랄 것 없이 작성했고, 5년간 일어난 일의 순서대로 그저 글을 나열했다. [강이의 마주이야기]는 인스타그램에 사진과 통찰을 짤막하게 기록해 놓은 것들은 따로 모아두고 싶어서 보관용으로 작성했고, 이것 또한 2년간의 기록을 시간 순으로 나열했다. 그래서 기획이라고 할 것이 없어서 패스!
매거진으로는 [자연으로부터 배우고 자라기]와 [작가라는 꿈]을 발행하고 있는데, 이 글들은 시간 순도 아니고 목적도 아직은 분명하지 않은 버리기는 아깝지만 한 데 모아서 묶기에는 연결고리가 부족한 글들의 집합이다. 즉, 기획 없이 그냥 쓰이는 내가 좋아하는 단편들의 모음이다.
기획에 대해 이야기할 거리가 있는 브런치 북은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이유_1]과 [친절하지 말라고 누가 그러던가요?]이다. 이 두 책은 아주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고 연결되어 있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강하게 얻게 된 목표는 '과거에는 인간에게 아주 중요했고 일상적이었으나 경제 논리에 의해 이제는 소외되고 잊혀져가는 가치들'을 들추어내는 글을 쓰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그러하고 친절을 베푸는 일이 그러한 가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을 아무개인 내가 내 멋대로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교류분석이라는 이론을 빌어 글을 쓰고 있다.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이유_1]
이 책은 교류분석 학자인 Jean Illsley Clarke의 발달단계 이론을 근거로 하고 있으며, 발달 단계마다 들어야 할 발달 과업을 수행하는데 도움이 되는 '긍정적 지지어(affirmation)'을 빌어 저출산 시대에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이유를 새로운 시각에서 써보았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 대한 기회비용만 따질 뿐 아이를 키움으로써 얻는 이익에 대해 생각해 보지 못하는 현실을 수면 위로 띄워보고 싶었고, 발달의 재순환 이론을 빌어 아이를 키우는 일이 자기 계발의 효과를 내는 일거이득의 수지맞는 장사임을 알리고 싶었다.
프롤로그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일은 자기 계발의 경험이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였고, 이어서 발달 단계에 따라 발달 과업을 차례대로 나열하며 글을 전개하였다.
이 책의 중심이 되는 내용 (2화~10화) : 발달 단계에 따른 긍정적 지지어와 육아 에피소드
그다음에는 부모교육 강사로써 내가 경험한 육아와 보통의 평범한 부모들의 아이를 키운 소감은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를 확인해보고 싶어서 나의 부모 교육에 참여하며 2년 이상 원장과 학부모의 관계로 만나온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필로그에서는 이 책을 활용하는 방법과 내가 생각하는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이유에 대한 주관적인 견해를 덧붙였다. 이제 에필로그의 발행만 앞두고 있는데,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니 역시 글은 군데군데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전체적인 기획은 깔끔하게 마음에 든다-
[친절하지 말라고 누가 그러던가요?]
이 책은 교류분석 학자인 Claude Steiner의 스트로크 이론을 근거로 하고 있으며, 관리자들이 겪는 '친절'의 어려움과 곤란함을 스트로크 경제(stroke economy)라는 개념을 빌어 이야기하고자 한다. 친절은 손해 보는 관리 전략인지, 성공하는 관리 전략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짧은 관리-운영 경력이지만 교류분석을 공부하고 스트로크의 힘을 확인한 사람으로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이것이다 싶었다. 관리자를 길게 이어가고 싶었다거나, 교사를 오래 해오지 않았더라면 지난 5년 동안 친절한 관리자로 남을 수 없었을 것 같다. 이 글의 기획도 내 마음에 든다. (나는 종종 내가 한 음식을 먹으면서도 '맛있게 잘 만들었다'라고 표현을 하는 종류의 사람이다-)
프롤로그에서는 친절이라는 관리전략이 실패했던 요인을 이야기하면서 친절이 틀린 것이 아니라 친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 사용했던 나의 오류를 밝혔다. 그다음 편에서는 친절을 오해했던 이유들을 분석하며 스트로크와 스트로크 경제에 대한 개념을 가볍게 설명했다. 그리고 이어서 스트로크 경제법칙 5가지를 하나씩 풀어내고 타파할 계획이다.
이 책의 중심이 되는 내용 (3화~7화) : 스트로크 경제 법칙에 따른 경영 에피소드
본 내용에 이어서는 스트로크 경제와 관련하여 덧붙이고 싶은 원리 두 가지를 각각 8~9화로 풀어내고, 10화에서는 친절해도 된다는 허가를 주는 에필로그로 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아직 겨우 2화를 발행했으므로 이 책의 완성도를 예상할 수 없지만, 기획은 마음에 든다!
책을 기획하는 일이 재미날 줄이야, 올여름 브런치 작가가 되고 글쓰기와 친해지면서 알아차리게 된 나의 흥미점이다. 요즘 글을 쓰면서 드는 생각은, 평생 할 수 있는 재미난 취미생활을 찾았다는 것! 더불어 내가 교류분석 이론의 틀로 바라보는 세상의 긍정적인 면들을 내가 대단한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의 아무개이지만, 이렇게 브런치를 통해 생각을 나누어 보일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는 것이다 :)
나는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소리소문 없이 조용히 아이를 낳아 키우고 묵묵하게 친절을 수행하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그거 손해 보는 거 아니에요! 호구되는 거 아니에요! 너무나도 잘하고 계셔요! 하고 목청껏 외치고 싶다. 그래서 글을 쓴다- 멀리까지 들리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