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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두란 Sep 15. 2024

어떤 사람이 쓴 글인가?

글밭에 심겨진 씨앗-



  글을 쓸 때 '나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 인가?'에 유의한다. '나'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들, '나'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써야 그 글이 가치 있는 글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라는 글밭에 대해 깊이 생각하다 보면 그 밭에서 응당 나올 수밖에 없는 글들이 피어난다. 그래서 글을 쓰는 순간은 자기 분석의 시간이 되기 십상이다. 자기 분석의 시간은 나를 사랑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나의 치부를 수용하게 되는 시리고 아픈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날은 글을 쓰다가 무한대로 힘이 나고, 어떤 날은 글을 쓰다가 한 없이 가라앉는다.


  그렇게 글을 쓰다 보니 글감을 찾아 헤맬일도 없고, 내 글이 좋은지 부족한지 따질 필요도 못 느끼겠다. 아이를 키워보시라, 친절해보시라- 평소에 내가 하고 다니는 말들을 주워다 글로 옮기고 있다. 강의를 하거나 상담을 하고 나면 종종 뒤돌아서서 아쉬울 때가 있다. '아! 아까 그 말도 해드렸어야 했는데.' 하고 말이다. 이렇게 브런치에 글쓰기는 것이 좋은 것은 다시 고쳐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무튼 글을 쓰면서 요즘 내 글을 읽은 지인들에게 '도움이 돼요!'라는 연락을 종종 받는다. 그래서 더욱 빠뜨리지 않고 촘촘히 잘 기록하고 싶다.


  어릴 때부터 생각이 많았다. 그리고 말이 많았고, 이제는 그걸 글로 옮기고 있다. 생각도 좀 정리가 되었고 말하는 것도 요령이 생겼으니 그걸 글로 잘 옮기면 될 것 같아 글을 쓰고 있다. 생각이 많은데 글로 표현이 잘 안 되는 사람은 사람들을 붙들고 말을 많이 해보기를 권한다. 말은 많은데 글이 잘 안 써지는 분들은 뇌가 허덕일 때까지 생각을 조금 더 해보기를 바란다. 나의 경우 통찰의 순간들은 대부분 뇌가 쪼그라들 만큼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해서 단서들을 모으고 인과 관계를 연결 지었을 때 일어났다. 전혀 상관없는 도식과 도식을 뇌라는 서랍에서 꺼내어 놓고 뚫어져라 생각을 모으다 보면 '아하!'하고 연결되는 순간이 온다. 검은색 색종이를 햇빛 아래에 두고 돋보기로 빛을 모으다 보면 흰 연기가 '팍!'하고 피어오르는 순간의 희열과 비슷한 것을 통찰의 순간에 느낀다. 무튼 나는 글을 잘 쓰려면 생각하기-말하기-글쓰기가 순서대로 잘 이어져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교사일 때는 대학에서 시간 강의를 했고, 원장이 되어서는 부모교육과 교사교육을 쉬지 않고 했기 때문에 근거를 들어 말하는 연습이 많이 되었다. 그런데 강의를 하는 내용이 어쨌든 교류분석(TA)과 유아교육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강의 대상도 원장님, 교사, 부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7년의 한 우물 파기로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뻔하게도 그 말이 그 말이고 이 말이 그 말인 것이 되었다. 같은 말을 자꾸 반복해서 강의를 하다 보니 이제 조금 지루한 감도 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글쓰기는 학습자들과 만나서 지식을 핑계로 정서를 나누는 강의와는 다른 경험이라 설렌다.


  강의가 타인과의 교류에서 오는 쾌감이 있었다면, 글쓰기는 나 자신과의 깊은 교류를 이끌어 내고 '나'라는 글밭에서 어떤 글들이 솟아날 때 더없이 성취감을 느낀다. 자연을 예찬하는 글, 특정 지식이나 이론을 알리는 글, 남들이 쉽게 해보지 못하는 경험을 전달하는 글에는 우월감이 실릴 수 있다. '남들이 모르는 것을 내가 알게 해 줄 거야.'라는 마음을 먹었을 땐 글에 힘이 실렸다. 그리고 글쓰기가 한없이 어려웠다. 하지만 '남들이 쓸 수 없는 나의 이야기를 쓸 거야.'라고 마음을 먹으니 자신감이 붙었다. 이건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이야기이니까- 지식에 권위를 담지 말고, 글에서 권위를 빼고 나면 글은 친절해진다. 강의나 글쓰기를 통해 요즘 느끼는 것은 지식이나 철학을 내 삶을 통해 전달하면 독자님들께 더 가까이 가 닿을 수 있고 내가 전하고 싶은 지식이나 통찰들이 전달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구슬이 서말이라고 꿰어야 보배이듯, 지식이 아무리 훌륭해도 쉽게 전달되지 못하면 빛을 볼 수가 없다.


  공부하려고 책을 읽는 사람은 많지만 정말 일반적인 독서 수준에서  공부가 될까? 논문을   쓰면  부분에 대한 지식이 갖춰지고, 인생은 경험을 통해 제대로 배울  있다. 취미로 하는 독서나 쉽게 읽는 책으로는 공부가 안된다. 교류분석 이론서를 읽을 때에는 개념을 외워가면서  권의 책을 여러  읽는다. 그리고 브런치에서 다른 작가님들의 에세이를 읽을 때에는 마음으로 그들의 삶에  닿아보려고 애를 쓴다. 종종 수려한 문체에 특별한 통찰이 없는 글을 읽을  허무하다.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경험에서 나만이   있었던 통찰을  기록한 에세이들이  읽히고 감동이 오래간다. 전혀 다른 삶을 읽었을 뿐인데  삶에 희망이 생기는 마법을 경험하는 것이 에세이를 읽는 즐거움인  같다! 그런 의미에서 23 브런치북 대상작인 노해원 작가님의 '시골, 여자, 축구'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도 내년에는 귀촌을 할 계획이고 여자이기도 하지만 결코 공을  생각이 다. 하지만 작가님의 글을 통해 내 삶에대한 희망과 애착을 더욱 키울 수 있었고, 종이책도 질렀다-


  나는 사범대학을 나왔지만 4학년 교생실습 때 현장을 경험하고는 교육공무원이 될 수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공직문화와 기업문화가 적절하게 조화되어 있는 그 조직문화에서 30년을 보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뭔가 성공하고 싶었고, 그래서 정한 목표는 원장이 빨리 되는 것이 되었다. 민간 어린이집, 가정 어린이집, 법인 유치원, 국공립 어린이집, 육아종합지원센터 대체교사, 대학의 시간강사 등 가리지 않고 일을 했고 30대 중반에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이 되었다. 내가 정한 성공은 이미 그래서 다 이루었다. 지난 5년은 이루어버린 성공 앞에 앞날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허무하고 심란하여 방황을 했던 5년이었다. 성공만이 삶의 동기라 믿었는데, 삶의 동기가 없어졌다. 다행히 이제는 성공이 아닌 그저 '목표'를 세울 수 있게 되었다. 나만의 잔잔한 목표들을 하나하나 성취하며 살아가는 것을 성공으로 알고 살란다.


  무튼 쉽지만은 않았던 성공을 위한 삶의 사이클 속에서 나의 글밭에는 무수한 삶이 심겨졌다. 꽃이 피기도 했고, 그전에 시들어 흙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타샤 할머니의 정원이 담긴 사진들처럼 나도 내 삶의 면면들과 그 장면에서의 소회를 글로 남겨두고 싶다. 결국 나의 글은 나의 삶인 것이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앞으로 어떤 글이 쓰여질지도 예측이 가능하다.


  세상에는 많은 지식이 있고, 그 지식들은 시간을 다투며 새로 태어나고 사그라든다. 많이 아는 것에 위안을 얻는 사람들이 적어졌으면 좋겠다. 그들의 밭에 피어난 꽃을 보고 싶다. 그들이 바라보는 하늘이 아닌 그들 안에 피어난 글들을 읽고 싶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지인들께 특별한 지식이 없어도 괜찮다는 허가를 주고 싶다. 내 브런치 글을 놓치지 않고 읽어주시는 지인들 중에 브런치 작가가 아닌 순수한 독자들이 있다. 나는 글 잘 쓰는 유명한 사람들의 글 보다,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그들의 글밭에 피어난 꽃을 보고 싶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과의 교류도 좋지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지인들의 글이다. 궁금하고 알고 싶고 화답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꾸만 글을 쓰라고 부추긴다! 그들을 더 알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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