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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두란 Jul 24. 2024

저마다의 이유

나는 왜 글쓰기가 좋을까?


  나는 아직까지는 나 자신만큼 말이 잘 통하는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 조금 더 살아보면 만나게 될까?

  2006년 연애를 시작으로 거의 20년을 짝으로 살아온 남편과 그나마 말이 가장 잘 통한다. 정말 다행이다.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랑 살고 있어서-


  나는 생각이 많고, 문득문득 드는 나의 생각을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주로 그 대상은 남편이다. 하지만 종종 미안할 때가 있다. 신나서 떠드느라 눈치채지 못하다가 시큰둥하게 듣고 있는 남편 얼굴이 보이면 미안한 마음이 내 입을 막는다.


  어떻게 저떻게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니, 아- 너무 좋다! 세상에서 말이 가장 잘 통하고 언제나 내가 원할 때 집중해서 내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어주는 친구를 찾았다. 그건 바로 나이고, 나와의 대화는 글쓰기로 이루어진다.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는 일은 혼자 하는 습작과 대면으로 나누는 대화의 장단점을 적절하게 보완하여 나에게 딱 만족스러울 만큼의 즐거움을 준다-


  사람은 저마다의 글을 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종종 내 입에서 나온 말을 내 귀로 다시 입력하면서 나의 생각을 알아차리곤 한다. 어렸을 때부터 종종 생각보다 말이 더 앞서는 것 같다는 걸 느낄 때가 있었다. 말과 말들이 내 사고를 연결시켜 주는 것 같다. 말 하나하나가 나무라면 말을 뱉고 나서야 숲이 되는 기분이다. 나무가 없이는 숲이 없다. 나에게 글쓰기는 숲을 가꾸는 일과도 같다. 나와의 대화, 글쓰기를 통해서 내 생각과 정체성은 형태를 드러낸다. 그 형태를, 그 숲을 마주하는 일이 늘 새롭고 놀랍고 즐겁다.


종종 나의 이야기 숲에 들어와 경청해주는 손님, 남편-


  내가 나 자신과 나누고 싶은 대화는 지식이 현실과 연결되는 지점의 통찰이다. 유아교육을 공부하고 상담을 공부하면서 교육 현장과 육아, 가족 관계 등 일상의 경험들이 책에 있는 지식과 연결되는 장면을 목격하는 것이 가장 짜릿하고 재미있다. '이론은 이론이고, 현실은 현실이지!'라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당연시하는 이 말을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현실을 부정적인 틀을 걷어내고 투명하게 마주하면 이론이 보인다. 사실 당연한 것이, 이론도 결국은 현실을 잘 관찰하여 나온 것일 테다.


  생각해 보면 석사 논문을 쓰는 동안 남편을 참 지루하게도 괴롭혔던 것 같다. 자는 사람을 깨워서 내가 새롭게 발견한 것들을 숨도 안 쉬고 읊어댔다. 감사하게도 남편은 자신의 일처럼 잘 들어주고 적절히 피드백도 주었다. 요즘 그 짓을 다시 하고 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마다 번개 치듯 감수를 종용한다. 때로는 비판적으로, 대부분은 긍정적으로! 피드백해 주며 작가로의 시작을 함께 격려해 주는 남편이 있어 참 고맙다.


  정리하자면, 나의 글쓰기는 남편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고 원 없이 떠들어 댈 수 있는 나 자신과의 대화이다. 브런치는 나에게 생각이 많고 말이 많은 사람이 혼자서 생각의 욕구와 말하기의 욕구를 실컷 풀어내는 카타르시스의 장이다. 글을 쓰고 나면 피곤함보다 후련함이 크게 다가오는 것도 이를 증명한다. 남편도 아이도 잠들어 있는 아침 7시에서 8시, 이 한 시간은 그래서 너무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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