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이후의 턴
40대 중반을 넘어서며 가끔 지인들에게 “나는 지금 죽어도 후회가 없어.”라고 얘기하곤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어느 정도 다 해봤고, 이 정도면 만족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이제 와 뒤돌아보니 “지금 죽어도 괜찮아.”라는 말은
“내게는 더 이상 이루고 싶은 목표와 꿈과 희망이 없어.”라는 말과 같은 뜻이었음을,
내 마음 깊은 곳에는 내리막길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새로운 목표, 계획도 없이 45세에 모든 일을 접고 편안하게 즐길 생각만을 하면서,
그나마 갖고 있는 것들을 잃게 될 상실감의 또 다른 표현이었음을 깨닫는다.
어쩌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멋있게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다 우연히 구본형 작가의 '그대 스스로를 경영하라'를 읽게 되었다.
책장을 펼치는 순간, 과거의 내 모습과 마주했다.
슬럼프에 빠져 안주하려는 모습, 다른 사람을 따라 하기에 급급했던 모습, 스스로 변하려 노력했지만 번번이 제자리로 돌아왔고, 자괴감으로 힘들어하던 모습들이 마치 거울을 보는듯 했다.
책 속 한 구절이 가슴에 와닿았다.
‘골수속에 있는 자신의 것만 남기고 모두 버려라.'
'내향적인 사람이 세일즈를 20년 넘게 해 오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자신과 잘 안 맞는 부분을 의도적으로 노력해 오면서 그의 마음은 늘 불편했고,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때로는 스스로를 모멸했을 것이고, 늘 적당한 데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사람은 태어난 성격 그대로 바로 그 사람인 경우가 태반이다.’
마음이 찡했다. 위로받는 듯했다.
나는 내향적이지는 않지만 묘하게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다.
문득 오래된 일기장이 떠올랐다.
이 일이 점점 힘들어졌을 때 적었던 일기다.
201#.11.26.
귀지가 시원하게 나오는 꿈을 꾸었다.
너무나 큰 귀지가 통째로 빠져나오는 꿈.
꿈속에서도 ‘이렇게 큰 귀지가 있나?’ 하면서 놀랬다. 그리고 시원했다.
어제의 깨달음에 대한 결론일까?
어제 난 느꼈다.
내가 물건을 판매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나는 물건을 아껴서 오래 쓰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예전엔 쇼핑이 취미였고, 최신 유행에 민감했지만, 어느새 취향이 변했다는 것을.
내가 좋아하던 잘 맞는 옷이 내 체격이 바뀌어서,
내 취향이 바뀌어서ᆢ
이제는 손이 잘 안 가는 옷이 된 것처럼.
내 일에 대한 열정이 조금씩 사그라지고 있었다.
마음이 찡했다. 그동안 '내 일'을 사랑하려고 얼마나 애썼던가.
거울 속의 나를 보며 위로의 눈물을 흘렸다.
이제야 나를 알게 되어 안타깝기도, 기쁘기도 하다.
꿈에 귀지가 나오는 것은 새로운 눈이 뜨이고, 새로운 귀가 열린다는 의미라던데...
일기장을 덮고 눈을 감았다.
예전에 한 임원분이 "00 씨가 홈쇼핑에 오래 있는 거 보면 참 신기해.. 잘 안 맞을 것 같은데.."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그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쇼호스트라는 직업은 어느 순간부터 내 DNA와 조금씩 어긋나고 있었다.
마치 불편한 옷을 입은 것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느껴지고 있었다.
배는 파도를 타고 흔들리며 간다.
40대 역시 흔들리며 간다.
문득 깨닫는다.
'40대 ‘불혹’이라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완성'이 아니라,
수많은 유혹과 고민속에서 흔들리며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