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주기의 정석
꽃집에 다녀온 딸이 볼멘소리로 전화를 했다
꽃을 사려고 갔는데 자존심이 상해서 그냥 빈손으로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었다
작년에 키우다 실패한 꽃 대신에 새로운 꽃을 들여놓을 마음으로 들린 꽃집에서
관리소홀과 무관심등을 뭉뚱그려 실컷 퉁망을 들었고 자존심을 구겼다고 했다
물은 몇 번 주셨나요?
내 젊은 날에 거의 달고 살았던 질문이었다
한때 나는 꽃을 파는 꽃장수,
꽃다운 젊은 날을 꽃을 팔면서 지냈다
집안에 들여놓고 키우는 어지간한 식물들을
그때 접했으며 구파발이나 일산 인근의 농장에서 물건을 떼어다가 파는 장사를 했었다
원예를 전공한 것도 아니어서 몇몇 서적과 잡지에서 얻은 설익은 지식이 전부였다
별반 아는 것도 경험도 없었던 초보 상인인 나는
급한 대로 온실을 운영하는 농장의 주인들에게 많은 것을 물었고 어깨너머로 배웠다
현장에서 보고 들은 대로
대충의 영업용 대사를 메꾸어 가며 아는 체를 했다
스무 살은 주뼛거렸으며 부끄러웠다
무안하고 창피했다
연약함을 감추고 싶었으나
생활은 나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삶의 압박은 참으로 무지막지했고 빈틈이 없었다
변해야 살 수 있는 거였다
무욕의 순진무구를 가식과 위장으로 덫칠하게
한건 아무래도 돈이었지 싶다
두둑해지는 주머니에 쓰다듬으며
무감해져야 어른다운 거라고 스스로에게 굳은살을 박아 넣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을 견디고 나서
정체성의 외형을 바꾼 나는, 꽤 장사꾼처럼 변했던 것 같다
판매를 위한 판에 박힌 관용구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고 매장을 방문하는 손님을 응대하며 이윤창출의 속내를 체화했다
돈을 버는 안목 같은 것이 조금 돋아나고
고객의 패턴이 나름 눈에 들어오고 나서야 느껴졌다
원예의 고수들은 따로 있었다
그들은 따로따로가 아니었다 한결같은 관심으로
화분 속에 식물을 마주 대했다
생명에 대한 경외와 관리자로서의 본분을 성실하게 유지하며 기쁨과 행복을 나누었다
주고 되돌려 받는 관계의 방식을 만족했으며 모자라고 남는 것을 양해하고 두둔했다
그리하여 잎맥으로 사는 존재의 이질감을 넘어섰다
새로움과 싱그러움 키워내는 방법을 터득했다 공통된 분모로서 자연을 함께 누리는 방법으로 살 줄 알았다
나는 너무 젊어서일까?
그들이 학습해 나가는 과정을 알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팡파르를 울리며 사랑과 고통의 이중주로 다가왔다
결혼이란 걸 하고 만 것이다
잉태와 출산과 육아를 통해서 성숙해 가는 어른의 진면목은 내게 키움과 보살핌의 실상을 얼얼하게 보여주었다
마음의 준비 같은 건 통하지 않았다
예비동작이고 뭐고 하는 여지를 두지 않고 처참하게 두들겨 맞는 일이었다
반면에, 보는 것만으로도 힘든 시절의 경험을 엄마 된 젊은 여자는 거룩하고 영험하게, 장엄하고 위대하게 치뤄나갔다
지고지순한 연마를 통해 이뤄가는 열매의 과정이었다
물을 어떻게 주나요?
물을 물로 보고 막 대하면 곤란한걸 뒤늦게 알았다
이른바, 물은, 화분 위에 화장토가 튀지 않을 정도의 수압으로 살살 주면서도 흠뻑 젖도록 주는 것이 좋다고 화원의 문만 열면 수없이 말해왔었다
하지만, 대야에 물을 받아 화분을 통째로 들여놓기도 하고
미세한 빗줄기처럼 오랫동안 흩뿌려주는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었다
어쩌면 물 주기는 사람마다 달라서 말이 모자랐다
내가 옳다고 주장했던 방법은 표피였다
수많은 기능적인 여러 가지 중에 단지 하나일 뿐이었다
살리는 건 마음의 일,
마음이 책임지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능력을 발휘해야 이룰 수 있는 거사였다
성의와 애정으로 관찰하고 대처하며 보살피는 마음을 집중해야 하는 숭고함이었다
물론, 깡다구 좋은 선험자의 일침도 있다
"죽인 만큼 알아!"
독한 말이다
경험과 학습, 실패와 극복을 통하지 않고 확연해지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다면 고수가 되기 위해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산 생명을 저세상으로 보내야 하는 걸까?
궁극적으로 사람은 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꽃이 아닌 바에야 어찌 꽃의 마음을 알 것인가?
모른다! 나의 다부져 가는 결론이다
나는 아직도 꽃에 물을 주는 가장 좋은 방법을 알지
못한다
꽃뿐 아니라 나를 위한 최선을 모른다
가족에게 그리고 지인과 이웃에게 해야 할 바람직한 것들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앞으로도 이 험난하고 오묘한 생의 질문에
정답을 찾지 못하고 오답을 낭비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왜냐면 그것은 '가리워진 길'
바닷속을 헤엄치는 고등어이기 때문이다
무지개 빛이 도는
그 물고기의 생기가 뭍에 노출되는 순간
아가미에 공기가 들어가고 죽어버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작의 화려한 깃을 찍은 사진이나 참사의 모습이 그렇듯이 사실이 대상으로 고정되면 본질은 날아가
버린다
본연의 모습은 뜨겁거나 위태로워서 장갑을 끼듯 아니면 외투를 입어야 하듯이 가두어야 하는 것, 대상의 피복으로 감싸서 애지중지 모셔두어야 하는 것이 아닐는지....
물은 어떻게 줘야 하나요?
어쩌면 집안에 들여놓고 함께하는 '분식물'의 생태는 근본자체가 자연 속에 그것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떨어져 나온 색다른 자연이랄까?
대지에 뿌리를 박고 사는 중에
사람 눈에 든 예쁜 식물들을 사람의 공간으로 초대한 것이어서 철저히 사람의 방식에 의해 유지되어야 하는 태생적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에, 조루에 담긴 물을 주면서 한 백번쯤 "잘 살아라"혹은"사랑한다"말을 하면 어떨까?
소나기처럼 내리는 기도와 응원의 말들에 시든 꽃이라 해도 꺾인 무릎을 세우고 부들부들 떨면서라도 기사회생의 희망을 품지 않으려나?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내게 상처를 주었던 맹독이 풀리고, 짙은 어둠이 어스름으로
차츰차츰 변하여 밝아지게 하는 어떤 신비가 내게 당도하지 않으려나?
뜻밖의 행운이 찾아올 거라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마치 무대에선 마술사처럼, 스마트폰을 발명한 사람처럼, 하늘을 나는 미래의 날개옷을 소개하는
사람처럼..
내게 삶은, 어설픈 개구리 수영으로 건너야 하는 강물과 같았다
눈 코 잎에 물이 차서 숨 쉬기에도 가빴고 늘 가라앉아 버릴 것 같은 공포에 시달렸다 하지만 생각해 본다
누구나 소심하고 어렸다
관심이나 자랑이 없는 시절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거나 아니면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좋은데..." 혹은 "잘한다!"라는 동기부여의 칭찬과 응원으로부터 출발했을 것이다
그것이 관계의 관심이고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런저런 허점 투성이들이 척하거나 체하는 숙성의 세월을 지나오면서
이 세상을 살만하게 하는 쓸만한 '물 주기'를 구현해 온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이미 물 주기의 정석을 아는
무수한 달인들이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모르거나 잊히더라도
면면하게 유지해나 갈 것이다
나는 그것이 기껍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