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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떤 공 양

by 나땅콩




공양이나 하러 건너오세요!


그리움의 허기가, 잃어버린 소중한 일부분이,

밀려들거나 허전하여 매만지고 싶을 적에

어김없이 건너오는 그 음성,

해 질 녘, 공터, 나를 부르던 어머니와 유난히도 닮아있습니다


언제, 밥이나 한번 먹자!


그 애매모호한 서두, 빗자루처럼 쓸어대는 지번 없는 인사와는

뼈골 속에 눌어붙은 심지 자체가 다른 변방입니다

말로 차려내거나 돈을 내고 먹는 그런 언약의 상차림이 아닌 거예요


나를 중심에 앉혀놓고 보고픔이 익을 때를 주시하는 기다림

마음이 다른 마음의 간격에게 띄우는 인사

살아있음의 안부를 묻는

유기농과 '살림'으로 초대하는 맞춤밥상이랍니다


'공양'을 처음 대한건 10여 년 전,

임당수의 심청과 맞바꾸는 '공양미'삼백석 말고는 듣어본 바 없었던 지난날이었어요


뭐 하라는 걸까?


이해하고 자시고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밥이거나 식사라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끼니'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그것은 오묘하고 복잡한 등뒤를 가졌습니다 막중한 전체가 따로 있어서 서서히 커지는 합창처럼 울려 퍼졌어요


예컨대, 밥은 살기 위해 먹고, 먹기 위해 사는 어느 중간쯤을 오갑니다만

공양은 몸이 됐다가 빠져나가면서도

순식간에 몸을 일구고 영혼을 정화했으며 유유히 되새김질을 했습니다

밥은 혼자 먹고 혼자 배설했으나

공양은 혼자라는 다른 몸을 데려와 마구 섞여

헤엄을 치며 함께하는 다른 몸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주었습니다

밥은 의무이자 책임이었습니다

소홀하거나 무심했으며 넘치거나 모자라는 대가였습니다

공양은 관심으로 자라나 주변을 배려했으며 양육하고 길러냈습니다

태도가 달랐습니다

나를 경로로 하여 남에게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나라는 씨앗으로 타자를 경작하는 고난도의 농사이며 농부였습니다


어릴 적, 내겐 '공양'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와 같은 위치에 '봉헌'이나 '미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순교자의 끄트머리일 거라는 예측을 하기도 했습니다

종교의 심연을 자부심으로 채웠고 저절로 흡족했습니다


절집의 부릅뜬 사천왕의 기세는 두려웠고 오방색의 단청들은 아름다우면서도 어지러웠습니다

특히나 향로 위의 더운 연기는 알 수 없는 거부감으로 나를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오히려 성당의 긴 의자와 무릎을 꿇는 묵상이 당연했고 정중앙에 모셔진 십자가의 모습이 나를 고개 숙이도록 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거기에 있었습니다


'공양'은 여전히 내 입천장에 들러붙지 않습니다

민망하고 미안한 말들 중에 하나인'토굴'이란 말도 있는데 나는 이 말을 연상할 때에 '토끼가 파놓은 굴'이거나

덥수룩한 장발과 수염으로 얼굴을 뒤덮은 도인의 거적때기 임시거처를 우선적으로 연상하기도 합니다


어찌하여 나는 이토록 무지하며 촌스러운 걸까요?


나는 여전히 이미지의 노예라서, 이교도의 '쯧쯧'에 감염된 듯합니다

선입견을 떨쳐내지 못한 채 뻣뻣하게 살고 있습니다


'발우'나 치렁치렁한 '가사'가 그렇고 게처럼 많은 팔을 가진 관세음보살상도 내겐 그렇습니다

불상의 오글오글한 파마머리도 가끔은 난해합니다

세월이 관통한 그 먼 통로가 낯설어서 자주 갸우뚱하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애를 써서 바꿔보려

노력 같은걸 하긴 합니다

가끔은 먼 과거로 회상을 내려보냅니다


예를 들면, 고려시대쯤으로 나를 태어나게 해 보는 것입니다

그때 나는 분명 불교신자로 살았겠지요

내친김에 나는 더 거슬러 신라쯤으로 올라갑니다 평상복의 원효대사를 알아보고 뒤를 쫓아갑니다

그가 흘린 한두 마디의 법어를 깨진 기왓장처럼

들여다보고 주절거리며 외우는 시늉을 해봅니다


정말로 내가 그 시간대에 살았더라면

나는 더 직접적인 그 시대의 정신과 문화로 길들었을 것입니다

아침마다 백팔배를 했을 것이며 차를 즐겼을지도 모릅니다

행여 머리를 밀고 절에 들어 면벽한 수행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저는, 그 절이 아닌 절, 행하는 선이 중심인 절에 갔습니다

공양간이며 다실을 한 지붕에 인 그곳에

처음으로 방문하는 손님을 모시고 갔습니다

저는 어려워하는 동행에게 미리 일러주었습니다


주는 밥 먹고 차 마시며 놀다 오면 되는 거예요!


온통 받기만 하는 것이 송구스러운지

뭐깐에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며 그분은 제게 다시 물었습니다

초면에 너무 죄송한 일인 것 같다며 난감해했습니다

그럴만했습니다 사실 저도 처음엔 그런 심정이었으니까요,


그게 도와주는 걸 거예요!


나의 묘사와 표현은

내 안의 소용돌이를 드러내지 못합니다

말은 미천하고 문장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어떻게든 '공양'과 '그 집'의 속내를 설명하려 여러 가지를 꺼내보았습니다만

공교롭게도 그럴수록 멀어졌습니다

결국 내게 아는 '밑천'이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독실한 천주교인인 그분은 버벅대는 나의 비현실을 '나눔의 실천' 정도로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고개를 끄덕여 인정하셨습니다

말고생은 그만해도 된다는 뜻이라 해석하는 순간에

나는 문득 생각났습니다


"아마 영성체 같은 걸 거예요

그 얇고 흰 밀떡을 성체라 모시고 경배하잖아요

그 의식을 통하여 일체를 완성하고

그 힘으로 문밖의 세상을 밝히고

그분의 뜻을 펼쳐 살기를 다짐하며

서로가 하나 됨을 축복하잖아요.."





공양이나 하러 넘어오세요!


'이나'로 낮춰진 비교급 속에 막중한 진면목을 저는 어렴풋하나마 직관하려 합니다

지극한 고품격을 대단찮은 삼시세끼 안에 옮겨놓으려는 성의를 봅니다

어떤 때는 그 자애로움과 다정함에 뭉클해져서

글썽이기도 합니다

선유동을 지나 칠보산과 쌍곡계곡을 지나 군자산의

그늘이 드리우는 곳

차로 달려 한 시간여쯤은 문지방 넘듯 단박에 넘어오라는 소식들을,


어쩌면, 우리의 마음은 닿아있어서

가고 말고도 없이 이미 통째로 하나인지도 모릅니다

허나, 만나면 더 좋을 것이며 몇 배로 배가될 것입니다

상승하고 합쳐지고 통합하여 영향력을 발휘하는 능력이 '공양 '일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 밥이나 먹을까요?


세속의 말이든, 중생의 약속이든 어떻든 간에,

식사를 함께 한다는 건 무엇보다 기쁨을 주는 일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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