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커피를 대신 타다 주는 취준생에게 젓가락의 중간을 들어 보이며,
천칭을 아시나?
대답을 붙들어서 무언가를 시도하려 한다
우주와 너 중에 누가 더 무겁지?
엄마 아빠가 우주에 있고
어마어마한 지구가 그 안이니
하나마나한 물음이라는 대꾸를 거두기 전,
벌써 대답이 마려운 아내는 "내가 내가" 하는 초등학생처럼 껴들어서 자기가 더 무겁단다
아마도 쓸데없는 얘기가 전문인 나를 지레짐작하고
더 센 무모함으로 조기에 갈무리를 하려는 것 같다
이번에는 아내를 타깃으로 삼는다
왜 당신이 무거운데?
식탁 위에 제철인 포도 두 송이
눈을 빼앗긴 아내는 포도씨를 우물우물 뱉으며,
당연하지,
내가 더 소중하니까, 내게 속한 우주가 더 가벼워지는 거지,
으음, 누가 보면 나도 저런 거지..
포도는 지난여름의 무한더위를 자신만의 맛과 향기로 숙성시켜 달고 시원하다
아내의 미각은 포용할 줄 아는 포도의 단물에 취한 나비만 같다
그런데 왜 나한테는 안 물어?
여태껏 이때를 기다려왔던 내가 말한다
제발 그러지 말고 그냥 말해라!
퉁망에 보상인지, 민망한 내 속내조차 심드렁한 건지,
아내는 어느새 몇 알 안 남아있는 포도 접시를 내 앞으로 디민다
껍질 속의 단물을 쪽쪽 빨아먹는 취준생 또한 나를 포도에게로 밀어 넣는다
아빠, 먹으면서 말해라!
나와 우주의 무게는 같을 거야
우주와 나는 동급이니까...
아무래도 이 집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침묵으로 말하는 스킬을 익혀야만 할 것 같다
저기 포도알갱이를 줄 세워 흡입하는 황홀한 모자의 우주 어디에도 내가 틈입할 간극은 없어 보인다
나는 멀끔히 바라보는 포도 알갱이를 집어 천칭의 작은 접시 위에 올린다
맞은편에 힘겹게 기어올라 내 몸을 앉히고
중심의 기울기를 살핀다
두 눈으로 포도를 보고 두 귀로 포도를 듣는다
두 팔로 포도를 매만지고 두 다리로 포도를 걸어 다닌다
이렇듯 포도라는 우주를 담고 들여놓을 줄 아는 저울이자 우주인 나는,
포도와 맞먹는 또 다른 우주로서 포도를 삼키며 포도라는 우주와 하나 되는 꿈이다
그런 연유로 나는 무엇에도 주눅 들지 않고 참아 견디지 않고 오히려 매 순간 감각 속에 새겨지는 찬란한 아름다움을 놓치고 싶지 않다
또한, 이 지구라는 땅덩어리에 살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들 그리고 다르지 않은 생명들과 함께 본래대로의 평화가 구현되기를 바란다
내 맘대로지만 아무런 피해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다양함이라는 우주의 방식으로
저 밤하늘에 무수히 흩어져 있는
별무리들처럼 무사태평하길,
자신감을 잃지 않고 영원토록 빛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