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포리 방파제에서 자정 가까운 바닷물을 끌어올리면 어둠 밖으로 새우가 튀어 올라왔다
새우 한 마리에 소주가 한잔, 태고적을 이야기하던 밤바다와 마른 생선의 침묵을 형광불빛으로 위로하는 가로등이 폐그물과 나란히 놓여있는
시월의 늦은 저녁이었다
살아가는 것이 가슴에서 미어질적마다 바다에 갔으나 바다가 뭍에 사는 이유와 무관하게 고여있는 거대한 구덩이로 보이던 날,
발길을 끊었다
어느덧 고정된 자세를 바꾸려 할 때마다 구부정히 휘어지는 허리, 나는 이제 새우를 닮아간다
바다에서 가장 멀어져서 바다로 가는 길을 서성인다
이슥한 갈대밭과 언덕 위에 대나무 잎새 반짝거리는, 오후의 햇살을 넘어가는 긴 줄이 달린 통발을 들고 해변으로 나아간다
밤을 새워 갈아 끼웠던 미끼의 환희와 가물거리는 수확의 저편들 들춘다
물결처럼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어부의 일상들, 파도가 몰아치는 갯바위와 마을이 보이는 비린내 나는 포구와 수평선을 넘어가는 원양어선이 검은 점으로 명멸하는 모래사장은 어디로 사라졌나?
헐벗고 고단한 기다림의 시간은 내게 무엇으로 남아있나?
심혈을 다했던 지난 노력들, 앞으로만 지향하며 달려 나가던 아우성과 지탄들, 빈털터리의 당혹과 민망함, 터질 듯 긴장한 나의 의지는 처음의 도약을 단단하게 매질하며 기초를 높여갔으니
나는 마치 야만의 땅을 지배하려는 정복자처럼 "기본"이라거나"이 정도"라는 층위와 지평을 넓히기 위해 분노를 태워 우울의 재로 남았다
비에 젖지 않는 화로 속의 땔감을 지키기 위해 처마밑에서 밤을 지새워 떨어야 했다
펄떡거리는 쟁탈의 경쟁 속에서
새우와 망둥어의 자족은 회귀하는 숭어 떼를 잡기 위해 더 먼바다로 향했다
큰 파도를 넘으며 남들이 겪지 않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승자가 가야 할 길이라며 스스로를 독려했다
그러나 이렇게 밖으로만 겉돌던 나를 바다는 한 번도 굶기지 않았다
비어있는 밥그릇을 무엇으로든 채워주었고
설령 내 것이 바닥나 있을지라도 누군가의 것을 빌어 채워주었다
그런 연유와 절차는 너무나 복잡한 내력을 가진 연속적인 것이어서 전부를 이해하려 한다는 시도 자체가 무모해했다
다만, 간절함을 애원하고 어딘가에 있을 포만감을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행동으로 채워야
하는 것이 나의 분수로 여겨졌다
그러나 애초부터
바다는 몰염치하고 말고 하는 그런 게 아니었다
바다를 언어로 규정하려 한 것은 내게 가르침을 준 사람의 오랜 습관 탓이었다
적어도 바다란
잘못을 몰아세우고 감당하기 어려운 체벌을 가할지라도 감옥에 가둔다거나 낙인을 찍는 판관이 아니었다
오히려 표독해 보이는 학생주임이거나 작정하고 버르장머리를 뜯어고치려는 눈물 많은 선생님에 가까웠다
나는 이러한 혼돈과 어처구니없는 중첩의 불편한 진실을 자존의 무게추가 한참이나 뒤로 물러난 장년의 나이에서야 발견했다
여하튼, 바다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고 나를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아서 나는 여기에 살아있다
다행히도 병들지 않았고 벌거벗은 몸을 옷 입었으며 한 데서 들짐승처럼 잠들지 않았다
나는 이제야 내가 던졌던 통발을 통해 바다가 내게 내준 결과들이 어떻게 나를 관계했는지를 유추한다
그것은 아마도 마음이라 일컬어야 할 것이다
통발도 바다도 죄다 마음이라 덮어씌워도 무방하겠다
예컨대 "나"라는 거미가 스스로 뱉어낸 마음의 실로 통발을 짠 후 바다로 나간 것이다
바다라는 마음이 내준 것들을 건져 올려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허기를 잠재웠고
다음의 마음으로 건너갔으리라
내 삶에 온갖 유효한 것들을 날마다 마음에서 나온다
나온 것들은 오랜 숙성을 지나며 마음의 꿈을 구현한다
사람인 나는 언제나 마음으로 살아가게 돼있으나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마음의 행방을 찾아 헤맨다 그것은 마음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은 보여서는 안 된다
지구를 지구에서 볼 수 없는 것처럼.. 달정도의 거리로 나아가야 볼 수 있는 마음은 거대한 것이 여야 한다
더 소상히 말하면 마음은 숨은 그림 찾기인데
질문 속에 이미 답이 보이는 수수께끼랄까
마음은 직접적인 것이다
응원하는 관중이 아니라 볼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달려가는, 땀방울을 흩뿌리는 경기 중에 선수이다
닿아있는 것이다 각막과 망막처럼 사물에 닿아있고 열일을 감당하며 나와 합일을 이룬 상태이다
어머니에 밥 짓는 냄새이며
아내가 깎아주는 사과의 속살이며 내가 친구에게
선물을 건네는"지금"일 것이다
나는 이제야 마음을 느끼기 시작하는 아둔한 게으름뱅이인데 그나마를 감사하며 넙죽 절을 올리고 싶다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는 내 안의 공화국에서 오는 기별만 같아 즐겁다
또한 피폐하고 모질어가는 흉한 것들에 길들어가는 나를 선량함으로 이끌어 주는 등대를 본 것 같아 배가 부르다
수없이 많은 인격이 자유분방한 낱낱의 모습으로 다양한 삶을 구현하며 살아가는 이 세상에
마음으로 행해지는 법이 완전하게 구축되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나는 흐뭇하며
통찰할 수 있는 능력과 기울어진 것을 바로 세울 힘이 마음 안에서 움트는 것이 나는 기쁘다
강화의 밤은 까맣다
외포리는 아름다운 별빛을 인채 거기 있을 것이며
지구라는 모래시계가 기울며 몰려드는 바닷물이
하루 한 번 여지없이 서해의 장관으로 밀려들 것이다
나는 마음을 산다
나의 사방은 걸음마다 어디를 한정 짓지 않고 여기를 드러낼 것이다
오늘도 나는 통발을 던진다
바다에 닿은 내가 아득하게 들어 올려지기를 고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