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 가까이 일을 하고 일어나 보니 여섯 시간이 지났다
첫추위를 알리는 일기예보의 눈금을 확인하며 여미지 않은 관정의 모터와 수도관을 떠올린다
밖은 아직 어둡고 이불속의 포근함이 더욱 따뜻하다
창문 틈으로 스민 초겨울이 닿았나 보다
저녁을 먹는 중에 취준생이 말했다
함께 운동을 하던 또래들이 줄어들어 이젠 혼자란다
다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다가 억지로 일을 하며 사는 삶과 좋아하는 것들을 즐기며 사는 삶의 차이에 대해 한 마디씩 나누게 되었다
어느덧 식사는 끝났고 해야 할 일은 너무 많이 남아있던 나는
화제의 테두리를 대충 오므려 접으며 늘어놓은 말들을 마쳤다
***잠깐이라도 좋아하는 것들에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의 하루는 활기차고 쓸만해
하지만 그렇다고 좋아하는 걸 하는 그 사람이 반드시 성공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좋은 일이 좋은 삶을 보장하지는 않겠지
그러나 좋아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한다는 건 꽤 중요하지
행복감을 오래 가질 수 있을 테니까
무엇보다도 좋은 일이 주는 경쾌함과 활기찬 영향력이 사람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 같아..
그건 목표달성을 위한 거라기보다는 자기중심을
견고하게 해주는 기능성에 방점이 두는 거 같기도
하고..
이런 내 말은 좋아하는 것들을 미뤄두고 해야 하는 것들에 평생을 시달려온 지금까지의 결론이기도 하지***
아침이 밝는다
훤해지는 만큼 지난밤에 횡설수설은 스펀지처럼 구멍이 뚫려있음이 드러난다
좋아하는 것은 무언가?
좋아한다는 착각은 얼마나 나를 속여왔나?
좋아한다는 허망한 올가미는
나라는 것을 옥죄여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속박의 도구가 아니겠는가?
내가 취준생이었을 때, 누군가의 일갈이 떠오른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냐?
나는 그 말을 살아오는 동안에 수없이 반복했다
좋고 싫음이 뒤섞인 혼돈의 일터로 걸어 들어갈 때마다 아로새겼다
그렇게 언어로 실리는 통념의 지배력에 몸을 맡겼다
속수무책으로 두들겨 맞기 위해 두 팔을 늘어뜨렸다
누구나 엄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자위하면서 발밑의 어둠을 밀어내는 근시안의 이해로 지냈다
멀쩡한 세월을 무진안갯속으로 흘려보낸 것이다
어리석은 언어의 포말로 일으키는 무지의 물결,
나는 찰랑거리는 문지방의 수위를 어쩌지 못해 밤새 물을 퍼내는 수재민이었거나
돌바닥을 두드리며 미로의 길을 찾는 당달봉사였을 테니 참으로 헛되다
좋아한다는 수시로 변한다
느낌이기 때문이다
느낌은 거울이 아니고
거울에 비추는 빛도 아니다
갑자기 전등불의 스위치를 켜고 끄는 어둠의 손이다
좋아한다와 싫어한다는 본래 한 반죽인데
사용자에 쓰임에 따라 모습을 바꾸는 밀가루다
그렇기에 구분 짓지 말고 단정 하지 말고
살펴가며 들어가 보아야 하는 혜안의 터널이다 통과해야 드러나는 진실이다
좋아하는 일이 선사하는 진정한 묘미는 융통성의 넓은 품에 들어 있어서 무덤덤하고 고요해 보인다
곁에 두어도 소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다
아마도 판단으로 가늠할 수 없는 신비한 빛깔을 지닐 것이다
내게 좋아하는 일은 글짓기
술도 밥도 가져다주지 않는 일이다
되지도 않는 문장을 꼬나보며 속을 끓이다가
가슴으로 낳은 금두꺼비를 안아보는 기쁨
누가 뭐래도 스스로 만끽하는 후련한 감동
방금 문밖으로 뛰쳐나갔더라도 어느새 돌아와
투닥거리는 금슬 좋은 부부의 일상이다
이번 주의 하루쯤은 시간을 내야겠다
기왕이면 아들이 좋아한다는 그 바닷길을 따라 걸으며 어설픈 이딴 얘기를 꺼내야지
구르는 낙엽과 빈가지로 짐을 벗은 나뭇가지를 우러르며
조금은 낯선 걸음으로 더디고 여유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