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골암 가는 길

by 나땅콩





안녕하세요


여느 날처럼

주방 한켠 설설 끓는 커다란 육수 솥

방금 손질한 식재료들과

도마 위 누인 칼등 곁을 지납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는

내가 아는 불교 방송 라디오 진행자

타일바닥 구르는

천수경인지 반야심경인지가

산중독경처럼

청정한 이른 아침이라서

팔순노모 같은 주인장에게

묻습니다


여태껏 깨달을게 남으셨나요


굽은 허리 곧게 펴며

백발 눈부시게 다가옵니다


그 끝 가도 가도 한이 없어


화들짝

놀란 나는

말씀의 곁불 쬐려

바짝 다가섭니다


중학생 아들이

절 다니는 내게

엄마가 부처되는 것이

진짜 절에 가는 거라 했지


새 봄

균열 속 움트는 새싹

느티나무 가지 너머

이파리들을 비추는

흰빛 같은 것이

할머니에게서 배어 나왔습니다



하늘이 내게 준말은

부처가 부처에게 가는 길

깨달음을 향한

나눔을 살았네

나와 나 사이

새로 듣는 공명

그 순간

창공에 선 잠자리 날개

꽃잎 지나는 바람

몸살 마친 새벽

한밤중에 옅은 지진으로

떨립니다


이제 아들은 마흔아홉

두 살 때부터

길이 없는 오막살이 그 절에 다녔으니

사십칠 년

나이를 먹네


젊어 이런저런 속을

많이도 끓였다는 사연만 같고

해탈이니 열반이니 필사하는 무명

빈 공책만 같아


요컨대

세상이란 해답은

보통사람 아닐는지


켜켜한 묵은 때가

우당탕 쏟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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