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
아무 데는 법(法)
아무 데는 고양이의 불편한 의자
그러므로 손등을 핥는다
타액으로 세수를 한다
어스름이 바뀌는 구간
고양이는
시도 때도 없이 쓰고 버린다
빛으로 만든 구슬 망토를 벗는다
이것은 일종의 배려
내게 오는 극존칭
뜨거운 목례
출입문을 통과하여 바퀴 달린 운반도구로 들어간 검은 물체는 기다린다
꼼짝 않는 발걸음을 곤두세워 숨을 참는다
건너편 탁자에서
입꼬리를 치켜드는 사라짐의 마술
장미꽃을 던진다
흔적은 나를 밟는다
간격은 카메라의 셔터
날카롭게 나를 제외시킨다
노출은 전적으로 고양이의 의도
추를 달고 무거운 쪽으로 가라앉는다
*주먹 고양이 *
마른 수건을 쥐어짜 재채기를 참고 있는 노란 봉지
장독대에 걸터앉은 햇볕바라기
공작의 깃털을 덮고 잠든 부엉새
횡단하며 배설하는 가위질
개를 만날 적마다 몸을 말아
방어하는 바윗돌
솜털처럼 하강하는 낙하산
보자기를 에워싸인 승전보
아, 끔찍하게도 달라붙어지지 않는 이 놈에 진드기들
*투탕카멘*
문지방에 앉아있는 검은 새
내가 놀란 만큼 너도 그랬구나
미간을 뒤덮은 먼지
얼굴의 모든 구멍은 튀어 오르는 타원
미라를 감싼 붕대와
대나무 숲에 버려진 테디베어
줄무늬와 물음표 꼬리
엎드린 사냥터를 지나면은
비린내
입가에 붙었던 살조각
정육코너를 맴돌다
빈 바구니로 돌아오는 골목길
어린 쥐가 자꾸만 따라오네
그래, 나는 너를 볼 때마다
옆으로 걷는 게 눈깔
근위병을 본다
*자애주의자(自愛主義者)*
머리에 수건을 동이고 청소도구를 든 여인이 문을 두드려
고양이를 키우지 않으니 옥탑방을
안내하지만
밀치고 들어와
천정에 거미줄을 먼지떨이로 털어내
풍경은 이기적이지 않아서
개기일식과 같고
횡렬로 줄 설 때에만
볼 수 있다는 말을 삼키다
사래가 들려
등을 두드려주는 여인이 언젠가 만났던 사람의 후생만 같아
진 빚을 온전히 탕감받고서
당신에게 쓸모 있는
선물을 하겠다는 약속
잊은 채 살아왔다고
그것이 여기라 고백하려는데
어느새 말끔히 치워졌다
여인이 대걸레를 세워두고 떠났다
어린 날에 엄마가 문틈으로 들여다본다
내게 남은 말은
각도가 기울어져 미끄러진다
*어둠과 빛의 내력*
사람의 눈을 하고
거리를 배회하는 고양이들은
겨울을 밀어내고
봄을 되찾아오기 위해
멧비둘기를 허공 속으로 데려간다
이토록
포악한 슬픔을 수용하기로 한 늦은 오후
딸꾹질이 멈추지 않아
눈물을 흘리며
숨을 참다가
엎드린 채 잠이 들었다
우리가 죽지 않고
언젠가는 다시 만날 거라는 다짐
달력에 그려 넣으며
누명을 쓴 도둑고양이처럼
담벼락 위를 걷다가
꿈에서 깨고 말았다
같은 길을 다르게 나타나는
고양이의 재주를 믿기로 한다
모든 제작과정은
신의로 시작한단걸
두둔하기로 한 난생처음
괴물이 찾아오는 잠자리에서
복수하려는 충동이 사라졌다
젖무덤에 코를 박은
검고 파르스름한 새끼들이
황급히 도망치며
쏟아지는 일몰에 커튼을 닫는다
고양이는 가도 고양이는 돌아오는 것이다
아마도
내가 애써 그린 것이 어둠이
어둠의 일부인 것처럼
나는 생각한다
너무나 인간적인
이런 희극이 또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