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년(幼年)
소음에 뒤섞인 남대문 시장이었을 거야
나른한 햇볕과 가게들의 차양 다닥다닥 어우러지는 곳
쪼그려 앉은 등 뒤 어깨 닿을락 말락 한 높이에서
내려다보았네
얼룩무늬 가물치
서로를 비벼대며 거품 일구는 미꾸라지
육각형의 등껍질로 웅크린 거북
대야 밖으로 뛰쳐나와 구불대는 민물장어...
물의 수평을 깨우는 촉감
밖을 통과하여 파고드는 거울
밀려들고 스미어 입체를 구성하는 시간
오갈 데 없이 갇힌
뭉텅 베어무는 거대한 상어의 이빨
타잔 영화의 피라니아 떼
흑백으로 물들이는 핏물 같은 것
인 연
파도 타고 오는 12월은
삼나무 숲 드넓은 남녘 섬을 기웃대다
이곳으로 넘어온다고들 하지
서핑보드 같은 고독 옆에 끼고
저문 바다의 포말로 부서지며
뭍에 오르는 눈사람
올해도 역마살이 끝나지 않아!
입김 얼어붙은
혼자라는 차가운 생각
화물열차의 기적처럼 멀어져 가네
너는 모르지
네가 넘으려는 바다
가장 낮은 아래로 돌아가는 물결이라는 것을...
말 장 난
떡국은 먹었느냐는 아침
한꺼번에 나이 들기로 했네
배 터지게 아픈 뒤 속임수란걸 배웠지
떡국을 구겨 넣으며 여태도 난 그까짓 게 궁금해
산다는 건 먹는 만큼 줄어드는데
도대체 늘어난다는 건 또 뭐지
꽃게와 아이스크림
상자를 열자
왕겨를 뒤집어쓴 물건이 깨물었고
내가 누군가의 먹이란 걸
엄마는 뒤늦게 말해주었다
죠스바를 크게 한 입 베어 물자
물고기의 끊긴 모가지가 유난히 붉었는데
내 안에 강력한 걸 누가 볼까
입을 꼭 다무는 습관이 생겼다
물 리 다
기실, 통 안에 든 것들은 이미 죽은 거여서
대야 속엔 꿈틀대는 불쌍하고 가련한 처지임에도 어금니가 여전히 박혀있다
지난시절은 영사기 필름 속에 가짜모습인걸 오늘도 새삼 되뇌다가 이내 잃는다
어 참 이 맛도 이만하면 물릴 만 한데...
미카엘의 꽃길
엉겅퀴 닮은 꽃을 찾아 산을 오르다
넝쿨에 온통 붙들린 흔적 없는 그곳
헤매다 죽을뻔한 끝
꽃이 있었네
걸어가며 피우는 꽃
누구도 가지 않는 길은 길이 아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