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해 의 조 건
다툼이 많았다던가
막내이며 늦둥이인 동생이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했었고 손위언니는 두어 살 터울밖에 나지 않았음에도 홀대가 심해서
서러움과 억울함이 꽤나 사무친 세월 지냈다던데...
이 오랜 갈등의 근원은 대가족 안에서의 치외법권과 선민으로서의 복덕을
출생의 순번으로 부여받은 동생에게 쏠려있었음에도
나중에 밝혀진 사실은
그 혜택을 오롯이 누렸던 막냇동생은 정작 자신이 우대받고 산 것에 별반 감흥 없이 지내왔다는 것
가끔 멀쩡한 관계 속에 숨어있는 민낯을 탐구할 적에
사람은 주어지는 위상이나 권리의 대해 이렇게나 당연해도 되는 건가?
복 종
형수는 리모컨을 조작하고 있었다
빨래와 방청소, 정원 풀 뽑기, 그리고 대리운전과 시장보기, 기타 등등... 거의 모든 가정사에 동원하고 있었다
나는 신속하면서도 흠잡을 데 없는 가사도우미를 치하하며 조련의 비법을 물어보았는데
처음부터 잘한 건 아니야!
형수가 출타하고 나서 녹초가 다 되어 흐느적거리는 반인 반싸이보그에게 사연을 듣는다
예전에는 안 그랬어!
원래는 저 여인이 내 말 잘 듣는 리모컨이었지
내가 무지막지하게 부려먹었어
원하는 건 죄다 시키고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면서 더 많은 걸 요구했었거든
그러던 어느 날 고장이 나고 말았지
입원해서 대수술을 받고 집에 오지 않았어
나는 많은 밤을 지새우며 홀로 남겨지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지
사람일은 별일 아니다 싶으면은 보이지 않는 거잖아
그러면서 결심을 하게 된 거야
여인이 살아서 내게 돌아온다면 내게 해준 것을 되돌려 줘야겠다는...
욕 망
'삽관'
그걸 호흡기관에 꽂으면 말을 할 수 없다
그 괴로운 걸 의지한 채 봄이 다 가도록 입원 중인 노인이 있었는데
모처럼 중환자실 간호사는 큰맘 먹고 진달래인지 개나리인지를 한 움큼 꺾어 보여주었다
아이들 쓰는 작은 칠판에 어렵사리 적었다고 글씨,
"고마워요 "
현재란
고통과 기쁨의 높고 낮음을 변주하며
환희와 절망을 무한반복하는 롤러코스터
간혹 나락의 밑바닥을 통과해 품위를 되찾은 초인이 어딘가에 있다지만 멸종위기,
오히려 더는 움직이고 싶지 않아 허공으로 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일등인 여기를 소문으로 들을 때마다 소름 돋는다
연 결
제게 생긴 이변
예를 들면 '지난날'의 재발견
"망했네" "괜히 왔다 가는 거구나!"
허무가 짓는 후회의 잔상들을 거꾸로 뒤집는 일이라 해야겠네요
인생의 반전은 한순간에 오지 않아서
천천히 스며들어 짙어지는 바탕색만 같고요
낱낱의 것들은 낯이 설어 받아들이기 어려워도 오래도록 간직하다 보면 전혀 다른 통찰의 빛을 비추기도 하는 듯
전지전능한 스승의 의도가 숨어 있음을 감히 알 수는 없지만
모든 것이 상생하고 순환하는 관계 속에서 연결되어 있음을 가정을 해봅니다
각자도생으로 위축되고 험악스러워지는 이곳에서의 삶이 좀 더 친화적이며 우호적이 될 수 있기를 바라기에
어쩌면 이미 연결되어 있는 우리네 마음에 등불을 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거라는...
생각만 해도 왠지 따습고 시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