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말 고사를 치르고 돌아온 아들은
벽 너머에서 자고 있다
아마도 조금 지나면
꽤 소란스러운 전자음이 울릴 것이고
오른손 엄지손가락 하나로 지속하는 이 정성스러운 집중을 깨울 것이다
잠꼬대 같은 울림
베겟머리에 흘린 침 자욱처럼 흥건히 젖어서
연말의 아침
평온하게 고여있는 침묵을 뒤흔들겠다
얼마 전에도
살그머니 방문을 열고 혼자의 몸을 뒤척이며
울어대는 소음을 멈추러
저 방에 들어간 적이 있다
복귀를 알리는
아침인사라 기꺼운 생각도 든다만
하도 시끄럽게 울어대기에
아예 꺼버리려고 여기저기를 누르다
홀연히 눈을 뜬 휴대폰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 참에
접촉으로 깨우는 나는 인간 알람이 되었다
휴일에 다니러 온 손위의 딸 또한 마찬가지
나는 기척 없이 가만가만
불이 붙어 날뛰는 손안에 짐승을 제어하여
그녀를 구출하려 나섰지만
비좁은 자취방
구석에 특화된 그 녀석
용한 수명을 이어온 기물인지라 쉽게 붙잡히지 않았다
암튼, 평상시에 손톱만큼도 피를 나눈 것 같지 않은 그네들이
따로 떨어져 있음에도
아침의 방식은 여지없이 닮아 있었다
그러한 경험이 반복되면서
도시로 나가 혼자인 청춘들이
단잠을 깨우는 기상의 비법
더 나아가 시간의 굴레를 틈틈이 확인하며 재촉해야 하는 시대의 군상
고단하고 불편한 청춘들의 진저리나 꿈틀거림
그들이 상대해야 하는 어마무시한 세상의 존재를 가늠하며 못내 안쓰러워진다
그러다가 말미에는
나의 오래전
고단한 그 시절의 삶 또한 오버랩되면서
좀 더 나은 애비가 되지 못한 것이
궁색해지다가
결국에는
송구함으로 비틀대다가 왜소함으로 쭈그러들곤 하였다
이런 수순이 넘쳐서일까
아니면 길 밖으로 나가고 싶었던 걸까
나는
나를 귀찮게 하고 성가시게 하는
그것에 대하여
무언가를 두서없이 기록하고 싶어진다
필시
알람의 이력에는
정시를 지키거나
안락을 떨치고 일어나겠다는
불퇴전의 의지가 있다
무엇과도 바꾸기 힘든
새벽잠의 달콤한 유혹을 팽개치고
태세전환을 시도해 보겠다는 어떤 꿍꿍이가 도사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저 어리고 혹독한 이들이
예열 없이 몸을 깨우는 소음에 더하여
혹시
실패할 것을 염두에 둔 연타석
소음의 방망이를 준비해 둔 것이겠다
분명
선택은 갈림길에 세우고
그중 하나로부터 다시 이분법의 가지를 치게 만드는 기막힌 재주를 가졌다
이거와 저거, 저거 아니면 이게 되어야 하는 상황에 유불리와 합리를 붉은 카펫처럼 펼치고
필연과 당위를 설득한다
그런데
선택이나 결정을 하고 나서도 문제다
그 순간으로부터 배제된 길
즉 내가 선택하지 않고 버렸던
그것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나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국립공원의 가파른 고개를 오르면서
소파에 벌렁 누워 간식을 먹으며
재미난 영화를 볼걸 하는 후회를 하게 한다거나
장시간의 운전에 지쳐갈 때
이럴 거면 집에서
낮잠이나 실컷 잘걸 하며
출발에 맹폭을 가하거나 여행길을 타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양쪽에서 동시에 발발한 적이 있었나?
지나온 날들은 돌이켜보건대
나는 한 곳에만 머물러 살았다
꿈을 꾸어도
꿈이 깨어도 항상 그 자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삶은
다른 길에 대한 염원과 환상을
멍에처럼 걸머지고
부질없는 체력을 소모를 하며
여기까지 헉헉거리며 걸어온 셈이다
어차피
외통수인 것을
평생 동안
선택해야 하는 줄 알고 살았다
결정을 내리면
어떤 식으로라도 된다
되게끔 되어 있는 것이다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된다
여지없이 길이 되는 이상한 길목에 들어온
앨리스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 지난 삶에는 너무 많은 힘이 들어갔다
생각이라는 도구가
또 다른 선택을 종용하고
무한반복의 궤도 속으로 이끌어
피곤하게 한다고 여겼다
기묘한 순환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헤매 다녔다
선택은 그것으로 종결
온 마음을 다하다 보면
새로움이 제안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다만 기꺼이 받아들이느냐 마느냐
주체로서의 역할이
선택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다
순수한 결정들로
곱게 피어나는
유리창의 성애처럼
서로 연결되어 환상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어쩌면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 한 방식으로 전송되는 신호들을
알아채는 의식
영속되는 현재였다
다행인 것은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걸맞은 보상이 반드시 예비되어 있었다
꽝 없는 뽑기와 같고
무엇이든 들려 보내려는 외할머니만 같아서
과정을 진행하는 중이거나
마무리하는 갈피갈피에
호감과 비호감
성취와 아쉬움의 반짝이며 숨어져 있었고
그것이 보상이며 후일을 기약하는 댓가이기도 했다
삶은
형편없이 부실한 것 같아도 꼼꼼하고 질긴 구름다리
나름
형평과 균형이 조밀하게 짜여 있어
기막힌 위장과 은폐로 드러나지 않을 뿐
어우러짐의 무대인 것이다
왜냐고?
나는 서른의 막바지에 아내의 퇴직금까지
탈탈 털어 이 골짜기에 뼈를 묻어야겠다는 비장한 결심을 했다
사십 살도 채 여물지 않은 나이에
인생사를 도통했다
내게 있어 나를 살만하게 이끌어줄
어떤 신도 없음에
나는 나를 진작 소진하기로 작정했다
어처구니없는 소용돌이에 갇혀 살았다
하여
만 이십 년을 망했고 문드러졌다
푹푹 썩어서 묻어야 할 뼈조차 망실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기별이 오셨다
조카뻘쯤 되는 후배가 내게 물어온 것이다
지나온 날 중에 언제가 좋았어요?
(야야~~
처자식 고생시키고 닭만 보고 살았는데 뭐가 있겠니?)
하지만
수천번 되뇌인 그 말 대신에 뭔가가 불쑥 튀어나오고 말았다
모든 날이 좋았어요!!
집에 오면서
집에 돌아와 그리고 지금까지도 생각을 한다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나
살지 말아야 하는 삶을 오래 살아보니까
살아야 하는 삶이 남은 걸까
아니다
멋진 말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내 말이 아닌 말이지만 입 밖으로 내니까
말의 지배가 시작됐다
나는 점차로 그 말 때문에 내가 미안해지고 내가 고마워진다
그간에 고생한 나의 60조인지 70조인지 모르는
내 몸의 세포들에게 칭찬도 해주고 싶어진다
우주의 동료들 수고했어요!
나는 가끔 생각한다
어떤 종교나 철학도 사람이 손꼽는 지혜도 다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것들
사람의 것은 사람에게 좋은 메시지를 줄 수 있어야 그래야 오래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또 생각해 본다
내가 지나온 날에 좋은 날만 있었을까?
거짓말
그럴 리가 없다
지나와서 깨끗하게 지워진 듯해도
하루에도 열두 번씩 오락가락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나는 편들고 싶어 했다
선택을 통해서
예속되는 안정감을 얻었고
감당키 어러운 불안을 진정시켰다
모종의 분리불안을 떨쳐내려고 매일마다 안달을 한 것이다
가난해지면, 이별하면, 사고 나면, 죽게 되면.....
기타 등등....
그것들로부터 도망치려고
나 또한 필사적으로 멀어지려고
아침마다 저 소란의 알람소리를 켜지 않았던가!
어쩌면
인생은 가물가물
여명 혹은 석양
어스름 새벽 혹은 밤드는 초저녁만 같아서
구분할 필요가 없다
완치되지 않은 화인(火印)
어르고 쓰다듬어
매만지는 손길로 가야 한다
알람을 꺼라!
알람을 켜라!
나는 이런 말을 하지 않기로 한다
좀 더 어수룩해지고 어중간해지기를
명암이 교차하는
삶의 모습들을 가만가만 음미하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를
원 없는 꿀잠으로 대체하는 것에
머리를 쥐어박으며
단정 짓지 말기를
선택과 집중에 목숨 건 사람처럼 서두르지 않기를
심지어는
잠만 쿨쿨 자는 게으름과 공생하는
꿈을 꾸기로 한다
삶은
소중한 선물이라던데
선물의 편을 가르지 말아야지
스스로 축복할 줄 아는 새해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