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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행 자

by 나땅콩




1


놈은 눈두덩이를 뚫고 온다

얼음장 같은 광대뼈를 지나는 물살

볼에 닿는 바람, 눈을 뜬다

두레박으로 건져 올리는 정신은 점점 맑아지고 가까운 곳을 불러오는 발자국 소리 귀에 담는다 동공이 열리면서 공간은 팽창한다

평평하게 누운 세상의 등과 옆구리가 나타난다

밤의 휴식을 끝낸 헛기침이 문틈으로 들어와 기지개를 켠다

아침이다


허기

놈은 허기

잠 깬 놈은 쉴 틈 없이 견주며

들락거린다 오간다

무수히 많은 계기판을 달고 어둠을 비행하는 우주선

편차와 거리를 그리고 판독을 행동하고 또다시 적용한다

내용은 욕망이다

채운 것은 반드시 분리한다

밑거름으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비움과 채움의 상반된 근거를 밀고 나가는

놈은 음험한 숙주

신호를 주고받는다

뿌리로 사는 나무

다른 몸이다

한 군데인데 어지러이 착각일

아지랑이, 들끓다가 불붙는다

진통이며 소란, 공복으로 수근댄다

혼연일체 아니 혼백일체라고 해야 하는 건가

놈은 잠든 시간을 벗어난다

물레방아처럼 고유한 영역, 가만히 피를 돌리고 나른한 호흡으로 숨을 쉰다

기절할 만큼 고통스러운 어느 순간에 미끄러지듯 빠져나온다

상태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고장을 수리하며 폐기 여부를 결정한다

살맛이 안나는 순간이다 오만정이 떨어지게끔 되어있다

분리된 알맹이는 납득이 되면 다시 들어간다

철저히 분체인 척 위장하지만 무섭도록 빠른 속도로 기만한다

놈은 언제나 하나

자신을 너무 많이 속인 거짓말쟁이

중첩, 춤을 추는 그림자

오로지 꿈, 꿈을 꾸고 있을 뿐인데,


응시,


경험 사이를 바라봄

유산과 돌봄

반복과 학습

대응방안

놈을 혼쭐낼 수 있는 유일한 급소


응시...


고만고만한 눈높이를 유지하며 바라보기

놈에 대한 미완의 관찰일지

허망하게 입안을 맴도는 빈말들

혼자 놀기, 취미생활

공생

어두운 곳에서의 촛불 끄기

발바닥이 닿기 전에 불판 위를 달려야 하는 환영

일종의 눈싸움.



2



놈은 주렴,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다리

시치미를 떼고 자신이 벌여 놓은 일들을

민달팽이 보다 느린 혀로 핥아서

밀어내는 절벽

놈은 아득한 높이

샅샅이 비추는 전등불

다리가 여럿 달린 벌레들을 보내

음식을 가져오고 몸에 구멍을 통해 배설한다

오후가 무르익는 권태로운 시간

대수롭지 않은 흉내를 내며 끽끽 대거나 방울소리를 내거나 모질게도 천조각들을 흔들어 댄다

아무도 보지 않는 등뒤의 좁은 공간으로

줄을 내려보내 바닥에 흥건한 냄새 맡는다

올이 풀린 인형을 들어 올리며

대사 없는 어릿광대 놀이를 한다


놈팡이,

모두가 잠든 사이

벤치에 앉아 다리를 꼬부리고 신문을 뒤적이며 노인이 버리고 간 고독한 돋보기로 개미굴을 비춘다


농부,

가을 봄 할 것 없이 씨를 뿌리고 한밤중에 일어나

깊숙한 가슴에 서늘한 손을 들이민다

물뿌리게로 물을 주고 꽃을 피우려 한다

빨갛게 무르익은 행선지를 등에 지고 총총히 집으로 돌아간다


떠다니는 돌멩이,

진공을 유지하려고 돌아다닌다

살아있는 것들에 막혀서 죽는다

죽음을 방법으로 모색한다

썩어서 다른 몸

호시탐탐 먹어치우는 이빨

스미기 좋은 입자


놈은 아무도 모르게 혼자 뱉는다

먹는 것을 가르쳐주고 몰래 토한다

강직된 경험 때문이다 무거워진 이다

차마 어쩔 수 없이 어른

맹독이 든 두꺼운 백과사전을 들고

숲으로 걸어가는 사냥꾼의 모습을 하릴없이 바라본다

웃다가 흘린 눈물, 닦아내거나 후후 휘파람을 불어댄다

밤새 적은 수취인 불명의 편지를 모아 불을 지핀다

사륜의 마차를 타고 주마등이 비추지 않는 거리에서 털 달린 가면을 버린다

가면 속의 얼굴은 비어있고 관념은 주눅 든 하인처럼 비좁다

늙은 개처럼 그렁그렁하다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레온 불빛의 피부와 갸름한 턱선을 가진 여인의 얼굴로 변하여

우화를 끝낸 나비처럼 날아오른다

놈은 뿌우하고 불어대는 고동

갯바위에 들러붙어 구슬피 우는 수인, 독방의 감옥, 녹슬어 버린 왕관, 순장의 행렬과 곰의 이빨로 만든 목걸이

놈은 권태, 어둠의 날들을 참담하게 비추는 등대의 날들,


놈은 죽지 않는다

모든 글자와 문양 속에 숨어든다 살아있다 바래어가는 윤곽 속으로 사라진다

놈은 무릎을 꿇은 기도, 정화의 불꽃, 찢어버린 여권 그리하여 이토록 구구하여 담기지 않는 속편, 손바닥을 더럽히는 검은 재.




3



새벽은 놈의 가장 순결한 말을 들려준다

단절과 지속이 열리는

벌어진 틈새에서 샘물이 솟고

소식을 전하려는 풀벌레처럼 오롯하다

무해함을 일깨우려 하는 이 순간도 사실은 놈의 소행인 것이다

놈이 원하는 건 온전함

상처 입지 않기 위하여 분주한 모습이다

놈은 평화주의자

갓난아이처럼 어미의 젖가슴을 찾아 배회한다

놈이 간절히 원하는 건 사랑의 이미지

식지 않기를 바라는 위로

너무나도 간절해서 자꾸만 손을 내미는 고독한 거지라서

성난 소처럼 초췌해지는 것이다

소멸하는 것은 역시 아름답다


놈은 나

놈은 사주하고 놈은 지배한다

나는 수행하고 나는 보호한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보이지 않는 손

베일에 가린 계획

보이지 않는 놈은 지금 나에 속한다

시간의 바다를 항해하고

산맥과 고원을 넘어 여행과 순례의 흙먼지를 뿌린다 거듭하여 만나고 또 헤어진다

다른 세대로 , 다른 입장으로 태어나고 체득해 나가는 것,

오늘도 여행의 힘을 산다

놈의 하늘

하늘의 여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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