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카 엘 라

by 나땅콩




흑백 안에 아주 작은 부분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 붉음이 바닷가에서 가지고 노는 폭죽이거나 어떤 분위기를 연출하는 연막탄의

안개처럼

다음 사진으로 성화봉송자의 횃불이 되어

따라오는 것이어서

나는 안경을 이마 위로 올리고 두 눈을 더 가까이 댔다


그녀는 모피코트를 입고 있었다

검은 모자를 쓰고 입을 가린

뾰족한 붉은 손톱이 드러나지 않는 반대편의 충격적인 상황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었으며

훤칠한 키의 그녀는 다른 세계에서 온 마녀였다


땡땡이 조끼를 입은 콘서트의 주인공이

팬들에게 삼십 주년에 대한 감사의 말씀을 전하는 동시에 다음곡을 소개하려는 듯했다

화려한 조명 아래 둘러서 있는 연주자들과 코러스를 배경으로 저물어 가는 한 해

다시 이어져가 몇몇의 사진들


오십견의 통증을 참고 야광봉을 휘두르는 열이 올라 들뜬 아내, 몸살감기에도 불구하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한양천리, 귀경길을 서둘렀던 투지의 아는 누님, 피켓을 든 그녀들은 앳된 소녀시절로 돌아가 시간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그 속에, 보이는데 잘 보이지 않은 무언가가 얼비치고 있었다

거스름 같아 보이는 아주 예민한 무엇!

껄끄러운데 감이 잡히지 않는 노이즈라고나 할꺼나?

그걸 뿜어져 나오게 하는 건 미카엘라였다

그녀는 곁에 서있는 다른 사람들처럼 관객으로 거기에 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일대일의 상봉을 위해 그녀가 무대의 주인공을 만나러 갔다는 느낌이었다

역설이었다

보러 간 것이 아니라 그녀를 보여주고자

즉 선보이러 간 거였다

거기에서 그녀는 연예인이었고

초대받은 유명인사였으며 콘서트 주인공의 이모이거나 아마도 공연을 축하해 주러 방문한 다른 엄마 혹은 가까운 친구... 그 이상이었다


나는 문득

지난 시간들, 거리에서나 공공장소 그리고 의외의 공간에서 느닷없이 마주했던 생경한 모습들을 소환하고 고정관념과 편견, 마찰을 빚거나 내 마음을 울렁거리게 한 모종의 상황들을 돌이켜 보았

혀를 차거나

유난스러운 것보다 무난한 것이 더 나은 거라며 고개를 돌렸던 장막 뒤에 금줄을 치워가며 당연함을 의심해야 했다


또한, 나는 그녀가 그동안 내게 베풀었던 밥상을 떠올렸다

어지간한 요리사, 식당주인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그녀의 음식들을 찬찬히 곱씹었다

육해공의 원재료들을 삼고 찌고 볶고 익혀서 구사하는 그녀만의 레시피는 가끔씩 상상을 초월하는 마법의 맛을 내게 선물해주곤 했다

나는 그녀가 너무나도 익숙하고 손쉽게 구현해 내는

동서양의 성찬들이 그녀의 특별한 미각과 상상력에

기반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음식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 때문일까?

아주 가끔은 어긋나고 빗나가다가 전혀 어처구니없는 맛이 나올 때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그럴 때마다 그녀는 너무나도 흔쾌히 그 원인을 설명하고

별거 아닌 듯 툭툭 털어 확인해 준 뒤 다음을 위한 레시피의 자료로 보관하는 여장부의 본색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녀는 일흔 살

그녀는 할머니

예사롭지 않는 패션을 구사하고 매주마다 방문하는

손자들을 반긴다

형제들과 지인들을 흔쾌히 초대하고 먹이고 재우는 것에 아직은 감당할 힘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한다

일 년에 한두 번은 사돈의 팔촌들까지 불러 모아 잔치를 벌이고야 마는 오지랖계의 큰 ,


나는 언제부터인지 그녀의 그늘이 맘에 든다

깊숙이 숨어들고만 싶다

그녀가 가끔씩 보내오는 묵직한 반찬통과 솥단지와 양은 냄비의 그것들이 오래도록 내게 도달하길 간절히 원하기에 입바른 소리도 참고

그녀 앞에서는 설설 기며 기꺼이 비굴해진다

그리고 또 존경한다

그녀, 인생에 주인인 그녀를 흠모한다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함

어쩌면 그녀의 세상은 그녀가 꿈꾸는 찬란한 만화경이 아닐는지...


방구석 가만한 하루는 답답하다며 씩씩하게 활보하는 그녀

간뎅이를 뭉텅 잘라내는 대수술을 겪으면서도

주님 앞에 울지 않는 씩씩한 미카엘라

다음생에 나는 그녀의 막내동생이거나 입 벌린 어린 새로 태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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