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민이 떠나간
사람들이 살지 않는
그곳에
여자 홀로 걸어 들어왔다
구둘을 손보고 봉당 아래
상추와 아욱 씨앗을 심었다
마당 가운데 두 팔 벌린 소나무
빨랫줄로 걸리고
촛불 켜는 별들을 지나
산안개 걸터앉는
고욤나무에 꾀꼬리가 울어댔다
굴뚝 연기 사그라드는 한밤중에는
팔뚝을 걷어붙인
사내 모습을 한 멧돼지들이
장독 모서리를 맴돌며 킁킁 댔다
꿀벌들의 시절
벽장 속에 여우울음 흉내 내는
족제비가 살고
너럭바위 또아리를 틀던 푸른 뱀은
여자의 발뒷굽치를 마냥 따라다녔다
함박눈이 지붕을 덮어
온데간데 없이 집이 사라지는 한밤중
천장 뛰는 소란은 새끼를 낳고
여자는 밥알을 떼어 쥐들을 먹였다
꽃잎 위 거미줄이 늘고
돌아눕는 앞산 와불
개복숭아 열매로 익어가는 어느 여름
샛노란 공사장의 헬멧을 쓴 인부들이
리조트인가 휴양지인가를 만든다며
흙먼지로 뒤덮인 오르막을 오를 때
길 없는 산길 밖으로
여자는 떠났다
화전민이 떠나간 그곳에
사람들은 더 이상 살지 않는다
마당 한가운데
커다란 소나무는 벌써 뽑히고
잉잉대던 꿀벌들은 오지를 않아
수박꽃은 피지 않는다
하지만 구름 걷힌 드넓은 하늘
휘황한 계곡
달이 비추면
장독소래기 들썩대는 멧돼지가
등성이를 내려오고
장롱 문틈으로 족제비가 실눈을 뜬다
들쥐들이 이리저리 천정을 뛰어다닌다
그제야 아궁이를 밝히는 군불처럼
빛나는 알몸으로 섬돌을 밟고
여자가 온다
어둠을 벗어던지는 춤을 춘다
환희의 노래 울려 퍼진다
세상 고요가 들썩이며 어깨동무를 하고
손뼉을 치며 꿈으로 든다
눈마중을 나가는 숲의 인사가 어둠을 달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