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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치 코 치

by 나땅콩










우린 무아라는 걸 알잖아요!


당대 최고수라는 스님 두 분이 나누던 한담은 그렇게 귀 웅덩이에 흘러들었고 파란 신호등이 켜지자 호기심은 무한반복의 궤적을 향해 액셀을 밟았다


무아무아무아, 아무 아무 아무....

아무래도 모를 일이었다 그들만의 소통에 끼어들만한 어떤 이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주고받는다는 그 표현이 왜 내게는 반영되지 않는 거지?

나는 그때부터 시간의 대문과 현관 사이를 지날 때마다 바닥을 뒹굴고 있는 색 바랜 영수증이나 옆으로 구르며 무심히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 드링크 뚜껑처럼 반문해 보았다

아주 가끔씩 혓바닥으로 문대어보는 사랑니의 흔적쯤이 생기는 거였다


나는 여전히 거기를 간다

토끼길 같은 그 거리에 매주마다 서고 지난다

두스님이 당연한 듯 없다고 말한 그것으로 여전히 살아서 묻는다

헛껍데기 같은 둘레를 가진 나는, 나란히 멈춰 섰다 달려 나가는 셈이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을 통해 소득이 전혀 없던 건 아니었다

'무아'를 필연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아직도 역부족이지만

정반대라 할 수 있는 '아' 또는 '유아'의 출몰과 급발진의 과정에 대하여 작은 경험이 쌓이기 시작했다


예컨대, 내가 말이야, 나는 말이지, 그딴 식으로 주어가 나를 선두로 나서게 하는 대부분의 경우,

이른바 '유아'가 작동하는 그때임을 눈치채는 것이다

이 지평이 열리는 즈음

나는 이미 '유아'의 어디쯤에 당도해 있었는데

마치 나도 모르는 사이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알아낸 것이 있다면

이런 경지를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유불리를 판단해야만 하는 상황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손해와 이익을 판단해야만 하는 엄중함과 불안한 생존심리를 재빠르게 안정화하고자 싶을 때 내 안에 어떤 센서와 장치가 있어서 능동적으로 동시반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듯 촉발의 순간을 포착하여 계단을 밟듯 순차적으로 꼼꼼히 관찰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 뜻과 달리 언제나 느닷없는 장소마다, 그림자처럼 서 있는 교통경찰

온데간데없이 이미 와 나를 기다렸다

떡허니 선글라스를 쓰고 손 내미는 그에게

면허증을 건네주고 이내 딱지를 끊기고

범칙금의 후회로 자꾸만 백미러를 들여다보는 것인데

야속한 마음에 비슷한 경험을 한 지인에게 하소연도 해보고 찡얼 대본 다 만 자세히 사정다들 자제하는 분위기,

시시콜콜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냐 하는 눈치다


아함, 혼자 놀자....


허나 '유아'인 상태가 너무 길게 가거나 지나쳐서 주변사람을 불쾌하게 하거나

가까이하기 싫을 만큼 무례한 사람은 늘 주변에 있기 마련,

한마디로 피곤하게 하는 사람, 어울리고 싶지 않은 사람, 엉기지 않으려고 손절하거나 낙인찍게 되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다


그들의 특징은 요렇다

물론

나만의 자의적 판단인데

확고한 믿음, 스스로에 대한 확신, 견고한 신념을 가졌다는 것이다

무엇과도 양보할 기미가 없는 정체성으로 무장한 상태, 겉과 속이 한결같아 단호해 보인다는 것이다


평소에 대화를 나누게 되면 끼어들 틈이 별로 없는 10:0

떡대화나 빵대화랄까!

틈입할 여지가 없어서

그냥저냥 듣다 보면 왠지 벗어나고 싶어 지는데 걸려들었다 싶으면 빠져나올 도리가 없다

언어를 채찍으로 사용하는 고문전문가를 만난 것이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나는 최근에도 그런 사람을 만났다

지독한 데다가 위험했다 치밀해서 무지하게 움푹 패인 기억으로 남았다

처음은,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해 주겠다는 달콤한 제안,

내게 좋은 일이고 자신은 도움을 주려 한다는 말은 농밀해서 헤어 나올 수 없을 황홀지경,

오직 연민과 희생의 마음뿐이라고 어깨를 토닥거렸고

마지막으로, 아주 작은 일 하나만 내가 끝낸다면 바로 모든 걸 나아지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런 찜찜한 경험도 겪고 나니 공부가 되었다

나는 몇 날을 이어졌던 그와의 대화 즉 내게 좋은 미래를 가져다주겠다는 위선의 말들을 펼쳐 놓고

검토해 보았다

내 속에서 솟아오르는 엇나가는 짜증과 성냄 시간들을 찬찬히 훑었다


그러는 와중

내 안이 보였던 반응이라 할까?

얼핏 본 것도 같은 순간이 유난히 도드라졌다

죽은 생선이나 살코기를 손질할 때 보는 뼈나 힘줄, 내 속에 돌연 긴장됐고 꿈틀대는

어떤 무엇이 있었다

줄다리기를 하거나 벽을 세우기 위해 하는 노력만 같았다

무더기 세포들이 힘을 합쳤다 근육의 덩어리들이

안간힘을 다했다 덮쳐오거나 내리누르는 압력을 방어하기 위해

끙끙대며 안간힘을 다해 용을 쓰고 있었다


나는 이로부터 지난날

지난 세월에 가졌던 어처구니없던 경우와 삭이지 못한 분노를 일깨워 그 시간들에 흔적을 조목조목 살피려 애썼는데

그 끝에서 돌연 폭력이 나왔다

낚싯바늘에 걸려 나오는 대어인 폭력에 줄줄이 매달린 것은 막무가내인지, 습관으로 차츰 굳어진 건지 모를

맹목적인 믿음들이었다


그 끝, 상처를 걸머진 음울한 내가 비틀거렸다

견제와 저항의 온몸 격투기가 끝난 후에 어그러지고 망가진 불편한 감정들이 결국은 불탄 뒤에 남는 재처럼 초라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패잔병의 목발이거나 승리를 자축하고 쓰러져 있는 새벽녘의 빈 술병처럼 나뒹굴었다


엄밀하게 말해서

그런 나의 행동은 방어가 아니라 공격이었다, 도발이었다

누가에게나 변명할 수 있는 정당방위였고 생존권 사수 같았지만

그간에 내가 당했던 공격성을 넘어서는 파괴의 힘을 발휘해서 상대방을 물리치려 했었다

상대방을 쓰러뜨리고 곤경에 빠뜨리고 싶어 하는 속내를 숨기고 있었다

결국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힘을 사용하다 보니

폭력에 내성이 생긴 거였고 그것도 모른 채 내 힘을 소진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상처 입거나

나의 것을 부당하게 빼앗으려는 상대를 물리치기 위해 그와는 반대인 신념으로 행동한다고 자부했으나 파괴적인 능력을 사용한 것은 그와 다르지 않았다

대응력의 부피와 함량이 같거나 압도적일지라도

발휘되는 색깔은 더 온정적이며 평화로운 것이어야 했다


신념은 무엇이든 간에 생성하는 신비한 능력이었고 결집을 통한 생성이든, 파괴를 통한 소멸이 든 간에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어쩌면 선의 또는 도덕과 명분이라는

밝은 빛의 편에 서야 한다고 믿는 내가, 스스로에게 그런 존재여야 한다는 신념을 끝없이 주입하며 스스로를 세뇌하는 것이었다

또한 나와 정반대의 신념에 대하여 공격성을 갖는 것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올바른 정의인 양 떠받들라고, 우상으로 숭배하라고 시킨 것도

어쩌면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토록 오랫동안 소신과 줏대를 강조한 수많은 조언과 가르침의 이면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거나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약자들의 신음이

애꿎은 욕을 먹으면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폄하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나처럼 거리에 나서지 못하는 소심한 마음은 태생이 찌질하다고 스스로를 비하하거나

심지어는 방구석에 앉아 시키지도 않는 쭈구렁탱이 글을 쓰며 숨을 고르는 건 아닌가?

하는데 까지 다다랐다


아무래도

어차피 명과 암이 불분명한 삶의 터전에서

아이를 나무라듯이 윽박지르고 내몰아가면서 한쪽으로 몰아대는 것이 오로지 정답이라는 편들기를 겪어내며 살아가야 할 거란 예측은 피해 갈 수 없어 보인다


우유부단하고 모자라는

거북이 보다 느리고 더뎌서 복장을 터뜨리는

나 같은 사람을 기다려주어야 한다고

함께 가야 하는 공동체의 운명을 나누어 짐 져야 한다고

그리하여

도둑질하는 용기가 도둑맞는 가난을 욕해도

믿을 건 우리들 밖에 없다고, 그래서 세상은 살만하다는 낙관을 누군가 말해줄 거라는 기대는

왠지 서글퍼진다


나만의 믿음인가?


하지만 나 역시, 나의 가족에게 이 자본의 이데올로기는

어차피 그런 거니까 수용할 수밖에 없는 거라고 적응하는 것이 살길이라고 다그쳤었다


나는 요즘, 나를 돌아보기에 한창이며 분주하다

저 늦잠꾸러기 아내를 위해 발뒷굽치를 높이 들어야 하고

얼어붙은 빈들 앞에서 추운 겨울을 함부로 탓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런 내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저 깊은 심연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

오래된 안목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데

무작정 하던 대로 내달린다


무아는 모를지언정

나는 내게 너무 눈치도 코치도 없이 살아가는 건 아닐는지... 그러니까 적어도 나는 내게만이라도 겸손이라는 걸 해야 하는 게 아닌가...


되돌아봐야 할 게 많은 문밖을 나선다

사방은 한겨울, 겨울나무는 생명을 아래로 끌어내려 좀처럼 오를 수 없는 깊은 침묵에 잠들어있다

오를 때와 내려올 때를 눈치 보는 내가 없다

세간의 염치없음에 견주어 보려는 내가 있는데

나는 잘 안보인다

뭐가 뭔지...오늘따라 생각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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