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연재를 시작하며

by DallE Lee

나는 자타공인 '이직의 달인'이다.

나의 첫 이직은 목표한 인더스트리로의 업종 전환을 위해 신입부터 만 6년간 몸담은 회사를 떠났던 30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운 좋게도 그 후로 몇 번이나 내가 원했던 시점마다 목표했던 회사로의 이직이 이루어졌다. 심지어 40대가 된 이후에도 두 번의 상향 이직에 성공하자, 주변인들로부터 공공연히 '이직의 달인'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간 마음먹은 대로 이직 스킬을 자유자재로 구사해 오던 나에게 첫 커리어 위기가 다가왔다. 40대 중반을 목전에 두고 계획에 없던 퇴사를 하게 된 것이다. 물론 퇴사 당시에는 위기라는 의식이 전혀 없었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마음만 먹으면 한 두 달 안에 새로운 포지션을 찾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밑바탕에 깔린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연차와 꽤나 높아진 몸값, 게다가 글로벌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국내 정치적 혼란까지 겹치면서 구직은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마치 그동안의 이직이 그저 운이 좋았던 것임을 잊지 말라는 듯한, 누군가의 냉소 섞인 일침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야말로 시련의 계절이었다.


그간의 이직 짬바를 모은 원기옥으로 한방의 시원한 취뽀를 꿈꿨으나 결국 계획했던 휴식 기간 이상의 구직생활이 시작되고야 말았다.


사실 처음 한두 달, 그리고 석 달 째까지는 너무 좋았다. 이게 몇 년만의 휴식이냐. 대학을 졸업한 해에 취업을 한 이후 단 한 번도 누려 보지 못했던 긴 휴가였다. 이직을 할 때에도 늘 1주일, 길어야 열흘 남짓의 휴가가 전부였던 나에게 그야말로 꿀맛 같은 시간이었다.


넉 달째 들어서면서부터 슬슬 구직사이트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몰랐다. 취업이 힘들 것이라고는. 곧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자기 위안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지만 채용 시장의 냉기는 쉽사리 녹아들지 않았다. 절대적인 기회 자체가 부족해 지원할 수 있는 포지션 자체가 손에 꼽히다 보니 슬슬 불안감이 엄습했다.


내 안에 자리 잡은 '이직의 달인'이란 글자가 희미해지고 낡고 해져 마침내 너덜너덜해졌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 왕년의 추억일지언정 나는 자타공인 '이직의 달인'이다. 게다가 세월이 더해져 원숙미까지 갖추지 않았는가.(뻔뻔함까지 늘어난 게 틀림없다.)


지금부터 지인들이 그동안 늘 궁금해하던 취뽀 비법을 풀어놓으려 한다.

잘 정리된 취뽀 비법서는 현재 구직자인 나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마침내 경력직 취뽀에 성공하고 나면 나는 마침내 이직의 달인을 넘어, '이직의 신'의 경지에 오르지 않을까라는 야무진 꿈도 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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