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이 필요한 때

9년의 롱런비결

by 비행하는 피리

홍콩으로 가는 비행 중 내 존에 인상적인 승객이 있었다.


​입사 후 만난 승객분들 중 역대급의 식사량을 선보이시는 분이었다. 정말이지 그분의 입은 7시간 내내 쉬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매우 바빴다. 그 승객분이 드시는 음식과 음료를 7시간 내내 쉼 없이 서비스해야 했기 때문에.


​다음 날, 홍콩에서 다시 돌아오는 비행에서 동료 승무원들에게 물었다. ​​

"​어제 그 승객분 역대급이지 않았어? 정말 힘들었어. ​"

​그러자 한 선배 크루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I already forgot about him."

(난 이미 어제의 그 승객에 대해선 잊었어.) ​


생각해 보니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이전에도 있었다.


1. 홍콩 딤섬 2.홍콩 완탕 수프 / 아침 8시에 이런 고급진 음식을 파는 식당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타 항공사에서 9년 정도 승무원 일을 하고 내가 근무하는 회사로 이직한 태국인 승무원과 같이 비행한 적이 있다.
그에게 물었다. ​​

"​넌 어떻게 이 일을 9년이나 해올 수 있었어?"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난 이 일 하면서 체력적으로, 감정적으로 소모되지 않도록 노력해.

비행하면서 가끔 승객으로 인해 감정적으로 힘든 날이 있으면, 그날 비행 마치고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안 좋은 기억을 비행기에 내려놓고 퇴근해.

비행에서의 안 좋은 기억들을 계속 마음에 담아 두는 승무원들은 그 기억들로 인해 맘고생 하다가 오래 못하는 경우가 많더라고. "

녀의 말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회사에서는 나보다 후배이지만 이 직업에 대해서는 나보다 선배인 사람의 말이기 때문에.



외항사 승무원 일을 하면서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난다.
매 출근 때마다 처음 만나는 상사, 동료, 고객과 함께 일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이다 보니, 사람으로 인해 별의별 경험을 많이 해왔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대부분은 친절하고 매너 좋은 사람들을 경험해 왔다.

​그런데 오프날 승무원 동료들과 만나서 이야기할 때에는 어쩜, 사람으로 인해 힘들었던 경험만 더 많이 이야기하게 되는지....​​


그동안 난 무언가를 오래 기억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요즘엔 마음의 건강을 위해 때론 건망증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례한 사람에 대한 기억,
억울했던 기억,
창피했던 기억,
실수했던 기억,
실패했던 기억은

​빨리 무시하고 잊어버리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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