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 나는 왜 이 글을 쓰는가
임하는 날 마지막 결재를 하고 현충원에 갔습니다. 일 년에 한두 번 가는 현충원이지만 퇴임하는 날은 의미가 있다는 생각으로 현충탑에 헌화를 하고 싶더군요. 막상 군사경찰이 지키는 현충탑에 가려니 어색하더군요. 군사경찰에 얘기를 해야 하는가도 궁금하고, 평범한 사람이 현충탑 앞에 서는 것이 어색하다는 느낌도 들더군요. 그래도 헌화를 하고 방명록에 서명도 했습니다. 30년 넘는 교육자 생활에서 당당함보다는 부끄러운 기억이 많이 나더군요.
퇴임 다음날 제주에 내려가서 열흘 정도 해안을 따라 걸었습니다. 그냥 서울에 있으면 개학날 마지막 근무교로 출근하는 추태를 보일까 봐….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습니다. 바닷바람이 얼굴을 감싸며 저를 위로하고 머리칼을 갈라놓으며 제 생각을 정리해 준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브런지스토리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딸을 보면서 저도 학교장 경험을 글로 써보기로 했습니다. 오늘날 학교교육은 구호만 난무하는 ‘구호형학교’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서 작은 정책이라도 실제 구현해 내는 학교라는 의미로 ‘구현형학교’로 정했습니다. 글쓰기 자체가 가져다주는 행복감도 있고, 우리 세대가 경험한 것을 글로 남기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우리 세대의 경험을 글로 남겨 후대의 참고가 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설득도 하고 있습니다. AI가 나오면서 사람의 작업 동작을 촬영하여 로봇을 훈련시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저의 에피소드도 누군가에게는 참고자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거기에는 제 자식들이 제가 삶의 어느 시기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 15년 정도인데 지금도 성묘를 가면 마음이 먹먹합니다. 객관적으로 부모님이 당신 세대에서 특별히 불행한 삶을 산 것은 아니지만, 자식 된 마음으로는 평생 힘든 농사일을 하시면서 저를 키우주신 헌신에 대하여 제 삶이 부족했고 부모님께 제 마음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큽니다.
생각하면 우리 세대가 산 시대는 영광의 시대입니다. 물질적 발전만이 아니라 문화적 도덕적 발전도 상상하지 못했을 만큼 이룬 시대란 판단입니다. 시내에 나갔다가 수많은 관광객을 보면 정말로 국뽕이 차오르더군요.
이 글은 제가 몸담았던 학교조직에 대한 마지막 충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