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 에피소드1(공모교장자기소개서)
이 글은 교장공모에 지원하며 지원 고등학교에 제출한 자기소개서입니다.
저 자신을 잘 설명하는 글이란 생각에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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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지방의 평범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사랑과 헌신으로 4남매를 키우셨고 우리 모두는 구김살 없이 자랐습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동네에 처음 전기가 들어왔던 열악한 환경에서 힘들게 농사짓는 부모님을 보며 사람 대신 일을 해주는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가 되고 싶어 했다는 것을 지금 제 딸과 아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믿기 힘들어 합니다. 부모님께서는 교육에 집중과 선택을 하여 누나들은 초등학교만 졸업시키고 저만 대학을 들어갈 수 있었기에, 지금도 이 혜택이 제게는 누나들에 대한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철없던 어린 시절의 봄날에 막 태어난 새끼 토끼들을 흙담 아래 풀어놓고 봄 햇살과 아지랑이에 취해 깜박 잠들곤 했던 저는 아지랑이 속에서 막연한 미래를 꿈꾸며 컸습니다.
지금 초등학교 동창회를 나가면 여자 동창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여자애들 고무줄을 끊지 않던 몇 안 되는 남자애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렇게 소심하고 운동을 못하는 학생이었던 탓에 책읽기를 좋아하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 당시 가장 공부를 잘한다는 고등학교에 합격하여 효도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입학을 해보니 작은 시골 중학교 우등생이었던 저는 똑똑한 친구들을 따라가느라 몸도 마음도 고달팠습니다. 지금도 삶을 까치발을 세워 사는 것이 좋은가에 대하여 회의감이 들곤 합니다. 80년대 역사의 격동기에 대학생활을 했습니다. 주체적 판단 없이 들어간 대학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당시의 시대상황도 제겐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학문을 하기에는 머리가 부족했고 학생운동을 하기에는 용기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세상은 좀 더 개인의 성숙을 기다려 주고, 개인은 세상을 헤쳐 나갈 용기와 능력을 기르는 것이 아름다운 세상이란 생각을 합니다.
○○중(5년) - ○○고(6년) - ○○고(4년) - ○○고(2년) - ○○과학고(8년)를 거치며 교직생활을 했습니다. 초임교사 때는 학생들과 이야기하고 축구하는 게 좋았습니다. 담임반 학생들과 종례 후 거의 매일 축구를 하여, 학생들이 집에만 오면 공부를 못하고 잠만 잔다는 학부모 항의로 교장선생님께 혼이 나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철없는 교사였습니다. 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부터 교과 수업 역량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학생들이 제 수업을 잘 듣고 세상도 교과전문가로서 저를 인정해 준다는 생각에 열심히 살았습니다. ○○과학고에서는 뛰어난 재능과 좋은 학습습관을 가진 학생들이 성장하는 모습과 경쟁에 뒤처지고 좌절하는 학생들을 함께 지켜보며 교사의 역할과 그 역할의 중요성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 시기에 EBS교재와 문제집을 저술하고 CATV와 EBS 강사활동도 했습니다. 제 수업을 녹음하는 학생들과 제가 낸 모의고사 문제를 푸는 전국의 고등학생이 있다는 생각에 우쭐거리던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어려움이 있어도 공적 역할인 교사로서의 생활을 열심히 했다 생각하지만, 돌이켜보면 좀 더 지켜봐 주고 응원해 줘야 할 학생들도 많았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움도 많은 교직생활이었습니다. 또한 교사 이전에 인간으로서 좀 더 성숙하지 못하고, 학생 개개인에 대하여 좀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지 못한 것도 아쉽기만 합니다.
인간은 시간이 흐르면서 성숙해 가는 것일 수밖에 없지만, 학생을 마주하는 교사의 삶은 좀 더 성숙한 인격과 헌신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기에, 미숙하고 못다한 제 책무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교육지원청 – ○○정책과(방과후팀) – ○○교육지원청 – ○○과정정책과(학력평가팀) - ○○정책과(중등인사팀) - ○○교육과(중등인사팀) - ○○고 교감(2년6월)을 하며 교육전문직과 교감 생활을 했습니다. 교사생활을 20년 넘게 하다 시작한 장학사 생활은 다소 힘들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일과 사람을 접하고 학교를 지원한다는 생각에 즐겁게 생활했습니다. 개인의 개성과 특성보다는 조직 전체의 원리가 다소 갑갑하기는 했지만 큰 조직체 작동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수용하며, 제 나름 맡은 일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며 창의적으로 일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중등인사팀에서 징계업무를 담당하면서는 세상의 어두운 면도 많이 보고 적절한 장면에서 저렇게까지는 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안타까움도 가져봤습니다. 인사팀에 근무 중에 교육청 직원을 대상으로 선정하는 「친절공무원」에 선정된 것은 쑥스럽지만 즐거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고에 부임하며 바라본 일반고의 상황은 제 예상과는 상당히 달랐습니다. 교감으로서 학교의 교육 기능을 회복하고 학교 교육에 활기를 불어넣을 방안으로 「학교프로그램 구축과 학생에 대한 직접 설득」을 중심으로 교감의 역할을 수행하기로 결심하고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이십여 가지의 학교프로그램을 기획‧조직‧재원확보 등의 역할을 하고 매 프로그램이 시작할 때마다 5분 정도 프로그램의 취지와 참가 학생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설득하곤 했습니다. 그 때 받는 학생들의 박수와 강렬한 눈빛이 제겐 큰 힘이 되곤 했습니다. 일 년에 두 번 관심 학생들과 팔당에서 자전거를 타기도 했습니다. 갈등과 어려움이 생길 때는 혼자 술잔을 기울인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신념과 의지로 직무를 수행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끊기 힘든 업(業)이 선업(善業)이라 들었습니다. 제가 선의를 갖고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어떤 인정이나 보상에 대한 기대로 이어지지 않기를 늘 경계하며 살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경계 자체가 선업이 아닌가 합니다.
50대 중반의 남자로 여기에 서 있습니다. 평생을 농토에 묶여 사신 부모님이나 힘들게 사는 친구들을 생각하면, 저는 그저 공부를 조금 잘했다는 이유로 제 능력과 노력 이상의 보상을 받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 행운에 감사하지만 가끔은 과도한 행운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과 함께, 이 세상에 갚아야 하는 부채를 느끼곤 합니다. 만약 현재의 저에게 어떤 능력과 열정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교직이 키워주고 일깨워 준 것이기에, 이제는 그에 대한 보답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날 학교가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학교의 역할이 후퇴하는 이유의 상당 부분은 외부 변화에 기인한 것이지만, 교육계 내부 종사자로서 우리가 좀 더 노력한다면 지금의 학교 모습보다는 더 나은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국가가 어려운 시기에 교원로서의 역할에 좀 더 충실하여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교육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면 이 또한 멋진 삶이 아닐까 합니다.
햇살이 제 뼈를 강하게 하고 행운이 저에게 긍정적 신념을 심어준 것은, 저로 하여금 오늘 여기에서 온 힘을 다해 학교다운 학교를 만드는데 역할을 하기 위한 안배라고 믿고 있습니다. 평범한 모든 인생에도 과업은 있다고 믿으며, 제 과업은 학교다운 학교를 만드는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