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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bin Mar 15. 2024

사람에게는 사람이 필요해

사람들과 친해지는 법

사람들은 나의 첫인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보통 차갑고, 조용하고, 새침한 공주님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물론 나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말이 많은 스타일도 아니고 먼저 강하게 다가가는 편도 아니다 보니 새침함이 보통 기본적인 나의 첫인상이다. 그리고 조금 친해진 사람들은 모두 다 날 착한 사람으로 바라봐준다. 근데 사실 나는 긍정적이고 싶은 사람이고, 걱정 많은 겁쟁이고, 때로는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 총대를 메고 지를 수 있을 만큼 욱하는 성격도 가졌고, 생각을 정말 많이 하는 타입이고, 사촌 동생조차 없는 집안의 막내라 어린아이 같고, 가끔은 제 멋대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철부지 같은 면도 있다. 그래서 날 오래 아는 사람들이 아닌 이상 이 성격을 숨기고 살았다.


대학교에 들어가고 난 후, 전에는 겪어본 적 없었던 상처를 사람들로부터 받았다. 그 당시엔 내가 사람들로부터 받는 상처에 대한 면역력이 없어서 대처가 잘못된 것 같다. 하지만 상처를 준 사람들에 대한 대처가 서툴었더라도 그 사람들에게 날을 세워 반격하면 ‘너 갑자기 왜 이래?‘라는 반응으로 오히려 내가 더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사람들이랑 잘 지내는 거 다 필요 없구나, 혼자가 최고구나’하고 2년 정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최대한 피했고, 혹시 만나더라도 친해지려 하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철벽녀라는 말이 수식어로 따라다닐 만큼 사람을 피해서 그 2년 동안은 새롭게 친해진 사람이 없다. ‘이 사람도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가슴속 깊숙이 남아있던 것 같다. 한동안 정말 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과만 시간을 보냈다. 말 그대로 다시 상처받기 싫어서 사람을 피해 다녔다.

그러던 와중 미국이라는 새로운 곳에 오게 되었고, 친구보단 영어나 열심히 배우다 가야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미국에 간지 4-5개월이 지날 때쯤 향수병이 진하게 왔다. 그런데 마침 딱 그 시기에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정말 행복했다. 향수병을 진하게 겪던 감정이 급하게 행복한 감정으로 솟구치면서 한동안 나를 제어할 수 없었다. 항상 하던 할 일도 제쳐두며 나라는 사람을 잠깐 미뤄뒀던 것 같다. 그렇게 나를 미뤄두던 와중에 또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다.


그 사람은 내가 처음과 다른 모습이라 나와 더 이상 잘 지내지 못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헐, 내 성격을 더 숨겼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사람을 만나서 또다시 상처를 받았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과거 내가 상처를 받고 사람 만나기를 피하며 보내온 2년이라는 시간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 순간 그 2년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다시 생각해 보니 나의 본모습을 보여주던 순간부터 나에게 거리감을 느끼던 그 사람은 딱히 나와 맞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나에게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 상처는 정신을 차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고, 과거에는 ‘그래, 난 이제 사람 안 만나’였다면 이번엔 오히려 ‘나는 잘 지내고 싶어도 잘 맞지 않을 수 있겠구나. 근데 내가 이 상처 때문에 또다시 사람들을 피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때 그 1명이 나에게 상처를 줬지만, 10명이 넘는 나의 주변 사람들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러면서 오히려 더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내가 숨기고 숨겨왔던 내 성격들을 처음부터 드러내기 시작했다. 남의 반응을 먼저 살피며 먼저 말도 안 걸던 내가, 먼저 말을 걸며 다가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처음부터 내 모습을 보여주면서 ‘나는 이런 사람이야, 넌 어떤 사람이야?’라는 마음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더니 오히려 사람들은 나에게 더 다가와줬고 나도 그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아온 사람인지 궁금해지면서 더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전에는 나를 필사적으로 숨기다 보니 나와 잘 맞는 사람이 누군지 파악하는 게 오래 걸렸었는데 이제는 나와 잘 맞을 것 같은 사람을 어느 정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보는 눈이 생긴 것도 있겠지만. 그래서 나를 온전히 보여주고 친해진 사람들과도 오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나를 보여주니 ‘배려를 잘하는 사람’이 나에게 잘 맞는 사람이라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배려를 잘한다는 것이 무조건 남을 위한다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면 식당에서 종업원을 무시하지 않는다거나 남의 의견이나 행동을 인정하고 존중하거나, 주변 사람들의 기분도 함께 생각해 주는 등 이러한 모든 것의 근본은 배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 또한 나를 지키되 배려를 잘하는 사람이 되려고 더 노력할 거고, 앞으로 어떤 사람들을 더 만날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나의 인연들도 열심히 지키면서 나와 결이 잘 맞는 새로운 사람들과도 잘 지내고 싶다.


보통 과거에 대한 후회를 정말 안 하는 편인데, 2년 동안 사람들을 피했던 그 시절은 아무리 생각해도 사실 너무 안타깝고 아깝긴 하다. 하지만 그 2년의 공백만큼 나는 더 빠르게 성장했고, 현재 내가 사람들을 대하는 생각과 태도, 현재의 인연들에 정말 크게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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