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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bin Apr 04. 2024

내가 순진한 줄만 알았지?

참을성의 역치

나에게는 두 가지의 모습이 존재한다. 참을성이 엄청난 편이라 처음에는 일단 최대한 맞춰주고 참아낸다. 그렇게 참아낸다고 해서 딱히 내가 불편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견딜만하다. 내가 생각하기엔 나의 참을성의 역치가 남들보다 좀 많이 높은 것 같다. 그래서 보통 나를 알아가는 사람들은 내가 가슴 깊은 곳에 용광로 같이 뜨거운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은 처음 본 순간부터 내가 좋다고 불도저처럼 직진해 오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은 나의 순진해 보이는 첫 모습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런 사람들에게는 나의 뜨거운 마음을 보여줄 만큼의 마음이 열리지 않아서 나를 제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불도저 같은 사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시간이 조금 지나면 순하고 착하지만은 않은 나를 보고 무조건 행동이 변할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렇게 강하게 말하지만 불도저처럼 빠르게 다가온 만큼 내가 받는 상처도 컸다. 사실 누군가 내가 좋다고 직진해 오면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마음 한 켠에서는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이렇게 좋아해..?"라는 불안함이 깔려있다. 역시 조금이라도 싸하면 피해야 한다고, 저런 불도저 같은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상처가 되었다.

그런데 웃긴 건 결론적으로 그 사람들이 오히려 나에게 사과하고 스스로가 부끄러워하는 꼴이었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면 나의 참을성이 큰 빛을 발한 것 같다. 그 사람들이 순간의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동안 한 번 더 생각하며 한 발자국 뒤에서 기다렸기에 내가 오히려 할 말이 더 많았고 당당할 수 있었다. 상대가 나를 공격해 오면 그때는 나도 배려 없던 그들의 행동들에 대해 제대로 터지는 것 같다. 나의 마음속에 뜨겁게 들끓고 있던 용광로가 터지면 차게 식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미지근해질 때까지 쏟아내야 하기 때문에 상대의 말문을 막는다. 어떻게 보면 상대는 그제야 내가 만만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과 자신의 잘못을 알아채는 것 같기도 하다.

20대 초반에는 "내가 얼마나 만만해 보이면 사람들이 저러는 걸까? 너무 호구같이 헤실거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나에 대한 의심은 접어두기로 했다.


사람을 만나다 보면 갈수록 무엇인가 불편한 점들이 쌓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만날 때마다 별생각 없이 편안함 마음으로 지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예를 들면 나와 오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나와 오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나의 묵직하고 뜨거운 마음을 잘 알아주며 나의 진가를 알아봐 준다. 그래서 오히려 아무 말 없이 옆에서 정말 담백하게 ‘너 잘하고 있는데?’라고 응원해 준다. 그리고 가장 감동받았던 포인트는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나를 칭찬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무의식에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느낄 수 있는데 나를 정말 존중해 주고 배려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사람들이라서 좋다.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았을 때, 상처 때문에 마음이 힘든 것도 있지만 이제는 일상생활에 영향이 갈 정도로 에너지가 엄청나게 소모된다. 그래서 요즘에는 인간관계에서 나를 만만하게 보고 함부로 판단하는 사람들을 보면 물론 여린 마음에 상처를 받지만 '어라? 선 넘네? 내 진가를 못 알아보고 공격하다니, 유감~'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인간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한다. 사람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좋아하는 것들을 찾으며 빠르게 회복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여리지만, 그렇다고 여리지만은 않은 가끔은 튼튼한 마음을 가진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확실히 표현하면서 나를 지켜야 하는 것 같다.


누군가 이상향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추구하는 이상향이 있다면 나를 조금 더 뚜렷하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고민해 보았다. 고민해 본 결과, 나를 담백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담백한 성격이라 하면 솔직하고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다던데 내가 그러한 사람인 듯 싶다가도 그저 이상향이라 그렇게 살아가고 싶어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나는 욕심은 많은 사람이기에..ㅎ

담백함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편안하고 부드러움이 좋아서 세상을 조금 더 따듯하게 바라보는 솔직, 담백한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곁에 두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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