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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Dec 13. 2023

남편과 아내의 인간승리





  아내는 지난가을에 두 접의 마늘을 심었다. 싹을 틔운 마늘은 건강하게 겨울을 보냈다.
 봄이 되고 따뜻한 햇살을 받은 줄기는 통통 해지며 튼튼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만큼 마늘 알도 커질 거란 기대에 설레었다.
그런데 두더지가 땅 속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통에 마늘 뿌리가 대부분 들떴다. 매일 밭에 가서 두더지 길을 밟아 줬지만 한 번 뽑힌 마늘은 자리를 잡지 못하고 누렇게 빛을 잃어갔다.
결국 알도 차지 않은 마늘을 수확했다. 대부분이 곯았지만 나머지는 햇볕에 말려서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보관했다.





어젯밤부터 내리기 시작하는 비는 하루 종일 내린다고 했다.

아내는 김장을 하기 위해 양념거리부터 준비하는 중이었다. 비가 내려 집 안에서 마늘을 까기로 했다. 그런데 알이 너무 작아 껍질을 벗겨내는 일이 걱정이었다. 그렇다고 버릴 수는 없어 물에 담가 놓고 껍질이 불기를 기다렸다.





 부부는  작은 칼을 손에 들고 텔레비전 앞에 마주 앉았다. 그리고 한 알 한 알  마늘을 까기 시작했다.

한참을 말없이 손을 놀리던 남편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인건비도 안 나오는 이건 가성비가 바닥이야. 사람이 할 짓이 아니야!"
"그건 나도 인정. 그래도 이걸 산다고 생각해 봐. 그 가격도 만만치 않을 걸? 밖에 비도 오는데 시간 보내기 좋잖아. 마늘 까는 일 없었으면 하루 종일 뒹굴거리며 낮잠이나 잤을 텐데."

  점심을 먹고 마늘 까는 일은 계속되었다.
꼬리뼈  한쪽 부분에서 콕콕 통증이 느껴졌다.
엉덩이를 살짝 들어 통증을 달랬다. 이번엔 다른 반대쪽이 아프다고 사정했다. 다시 엉덩이  위치를 바꿨다. 살색의 열 손가락은 물에 불어 하얀색으로 변한 지 오래였다.





오랜 시간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목도 아프고 허리도 결리기 시작했다. 아내는 잠시 쉬었다 하자, 남편은 시작했으니 끝장을 보자고 했다.

 인간극장 프로를 보면서 마늘을 까기 시작했다.
 다 까고 정리하고 나니 텔러비전에서는 여섯 시 내 고향'을 시작하고 있었다.
부부는 으드득 거리는 허리를 펴며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서로 손바닥을 마주치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소리쳤다.
"여보!  고생했어. 우린 오늘 인간 승리를 한 거야!
인간 승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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