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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Dec 14. 2023

남편 마음에 비가 내린대




          



  88년에 가을에 결혼해서 다음 해부터 김장을  했다. 그러니까 올해로 우리 부부의 김장하기는 35년 차다.

 첫 해에는 어렸을 때 할머니와 엄마가 하는 것을 곁눈질로 봤던 것을 기억해서 흉내내기로 했다. 첫 김장김치의 맛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김치를 좋아하는 식구들 식성 덕분에 해마다 맛을 내는 나의  솜씨는 점점 좋아졌다.  어떠한 진수성찬에도 김치가 빠지면 섭섭해했다. 그런 이유로 해마다 다른 가구의 두 배 이상의 김장을 했다. 김장철이 되면 또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일의 부담감이 한가득 얹혔다.


 김장 할때마다 남편은 나의 훌륭한 조수가 되었기에  남편 없이 하는 김장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남편의 일이 바빠서 차일피일 미루다 며칠 비가 잡혀 있는 날을 선택했다.




          

 전 날, 늦은 저녁에 배추를 절였다. 아침에 확인해 보니 아직 덜 절여졌다. 절임배추를 뒤집어 주고 양념거리를 사러 진주 중앙시장으로 출발했다.

어제 종일 내린 비로 인해 진주로 가는 길은 안개가 먼저 차지하고 있었다.



           



 '잠에서 깬 태양이 일어나며 하품을 하는 건가?

우리는 지금 태양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건가?'


 안개가 자욱한 길에 매료되어 엉뚱한 상상을 하며 수다를 떨었다. 내 엉뚱한 수다에 운전대를 잡은 남편은 말없이 웃고만 있다.



          



진주에 다녀온 후, 남편은 배추를 씻기 시작했다.

그 사이 나는 점심을 준비했다. 점심을 먹은 남편은 다시 배추를 씻으러 마당으로 나가려다 멈췄다.



          




 나는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남편 등뒤에 대고 소리쳤다.

"여보! 커피는?"

남편이 엉뚱한 대답을 했다.

"비가 내리네."

"이 좋은 날씨에 무슨 비가 내려?"

"커피는 당신이 내려 줄줄 알았는데 나더러 내리라니까 갑자기 마음에서 비가 내리네. 그것도 소낙비가, "

나는 웃으며 돌아서는 남편 얼굴을 쫒았다.

"아무래도 당신은 직업을 잘못선택한 것 같아. 개그맨이 됐어야 해!"

남편은 싱긋 웃어 보이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내 손에 커피 잔을 쥐어 준 남편은 다시 배추를 씻으러 마당으로 나갔다. 나는 등 뒤에 대고 소리쳤다.

"이제 당신 마음에 내리는 비는 그친 거지? 나! 이 커피 다 마시고 나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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