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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Dec 18. 2023

올망아! 미안해


 올망이 와의 인연은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귀촌 초창기에 우리와 인연이 닿았던 새끼 발바리 한 마리가 있었다. 옆 집 강아지였는데 눈을 뜬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꼬물거리는 네 마리중에  눈동자가 유난히 순해 보였다. 그 아이에게 곰순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곰순이는 자라면서 점점 이뻐졌다. 어느 날 동네 불량견에게 겁탈을 당했다. 그리고 4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두 마리는 정상으로 한 마리는 두 눈이 없는 맹견으로 또 한 마리는 한쪽 눈이 없는 외눈이었다.
 건강하게 태어난 한 마리와 한쪽 눈이 없는 한 마리가 우리와 인연이 되었다.
 새끼 강아지 두 마리가 딱 붙어서 돌아다닐 때마다 엉덩이를 씰룩씰룩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올망이와 졸망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일주일쯤 지나서 졸망이는 장염에 걸려서  안타깝지만 저 세상으로 갔다.






 올망이는 다행히 건강하게 잘 자랐지만  털이 짧은 다른 형제들과는 다르게 털이 많은 삽살개를 닮았다. 어렸을 때는 목욕을 자주 시켜 주며 털을 관리해 주었다.
하지만 일이 많아지면서 목욕시키는 일이 점점 소홀해졌다. 목욕을 자주 시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긴 털은 뭉쳐서 배 아래 주렁주렁 매달렸다. 하는 수 없이  털을 깎아 주기 시작했다.

 




 유난히 바빴던 요즘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다가  털을  깎아 주지 못했다.  빗질을 하지 않아 뭉치기 시작하는 털이 무거워 보였다. 날씨도 추운데 털을 잘라야 하나? 겨울을 이대로 보낼까? 고민했다. 하지만 상태를 보니 더는 미룰 없었다. 



  마당에 풀어 놓으니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사고를 쳤다. 토속 신앙인의 재단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민원이 들어와 철망 안에 갇히고 말았다.

  삼태기와 가위를 들고 철망 문을 열고 들어 갔다. 눈치를 챈 올망이는 집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멸치 몇 마리 가져와 유혹하니 슬그머니 집 밖으로 나왔다. 바닥에 눕히고 행여나 살을 자를 까봐 조심조심 가위질을 시작했다. 다행히  얌전하게 누워 있어서 수월하게 털을 깎을 수 있었다. 털을 다 자르고 놓아 주니 일어나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데 올망이의 표정을 보고 웃음이 터졌다. 나의 미용 기술이 맘에 들지 않나 보다 얼굴에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미안한 마음에 사료를 주었지만  먹지 않았다. 그런 올망이를 한참을 바라보다가 사과했다.
"올망아! 미안해. 날씨가 많이 추워 목욕도 시킬 수 없으니  조금만 참아라. 털은 금방 자랄거니까.
내 미용기술이 여기까지라서 더 미안해. 앞으로 기술을 좀 더 연마해 보도록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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