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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Jul 12. 2023

길 위에 생쥐 한 마리

아침 운동길에 만난 생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창문 너머 앞산 상황부터 살폈다.  지리산 능선을 걷고 싶어 청학동에서 남부 능선을 걸어 세석평전을 보고 연화선경 길을 걸어 천왕봉을 찍고 중산리로 하산할 예정이었다. 당일로 다녀오려면 시간이 빠듯해 지난밤에 배낭을 꾸렸다. 그런데 앞산에 안개가 잔뜩 끼었다. 남부 능선에 비가 온다는 신호였다. 젊은 시절엔 비가 오면 우중 산행을 하려고 객기를 부려가며 산에 올랐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이의 숫자가 발목을 잡았다. 하는 수 없이 배낭을 풀고 집 앞을 걷기로 했다.      

 비탈진 길을 오르락내리락 걷고 있는데 길 위에 생쥐 한 마리가 보였다. 순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걸음을 멈췄다. 가만히 내려다보니 생쥐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고개를 시멘트 길에 처박고 힘겹게 숨을 쉬고 있었다. 아마도 큰 쥐가 그러고 있었다면 발로 차서 풀숲으로 던져 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작은 생명이 힘들어하는 모습은 차마 외면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생쥐의 작은 몸에는 다섯 마리의 진드기가 붙어 있었다. 그놈들이 생쥐의 몸에서 얼마나 많은 피를 빨아먹었는지 바람을 불어넣은 꽈리처럼 통통했다. 진드기들에게 피를 다 빼앗기고 겨우 숨만 쉬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인간에게는 아주 몹쓸 유해한 동물이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생명인데 외면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대로 두면 진드기들이 알을 낳을 것이다. 그 알이 부화하면 최소한 5만 마리 이상의 진드기가 생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쥐도 싫지만 진드기는 더 싫다. 귀촌 초창기에 숲에 갔다 진드기에 물린 적이 있었다. 뒷목이 가려워 긁는데 무엇인가 손톱 끝에 걸렸다. 떼어내려고 해도 떨어지지 않아 겨우 떼어내어 보니 조그만 거미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함께 간 지인에게 물어보니 진드기라고 했다. 물린 자리가 곪아 진물이 나오다가 상처는 아물었지만 가려움증으로 한 달 넘게 고생했다. 그 이후로도 나는 그놈에게 자주 물렸고 그때마다 가려움증으로 고생했다. 진드기를 보는 순간 물리지도 않았는데 몸이 가렵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놈들을 생쥐의 몸에서 떼어내기로 했다.     

 쭈그리고 앉아 생쥐를 잡으려다가 잠시 망설였다. 맨손으로 잡으려니 손가락 끝에 세포들이 뾰족뾰족 날카롭게 깨어났다. 그리고 온몸이 오그라들어 도저히 만질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집에 가서 고무장갑을 가져오자니 생쥐가 사라질 것 같았다. 결국 잠깐의 고민 끝에 나는 맨손으로 일을 처리하기로 했다. 목덜미를 잡아야 하는데 내 손은 생쥐의 몸으로 가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생쥐는 생쥐대로 이상한 느낌을 감지했는지 발버둥 쳤다. 잠깐만 움직이지 말라고 사정하며 주변을 살피는데 길가에 나무 막대가 보였다. 나는 나무 막대를 주워 생쥐의 목덜미를 눌러 제압했다. 그리고 엄지와 검지손가락에 힘을 주고 사정없이 진드기를 떼어 길 위에 놓았다. 다섯 개의 발가락에 힘을 주고 그놈들을 무자비하게 밟아 뭉갰다. 발가락 끝에서 '투두득' 그놈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놀란 내 몸이 부르르 떨었다. 해야 할 일을 무사히 끝내고 집으로 서둘러 돌아왔다. 마당 수돗가에서 손을 씻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오며 가며 보이는 생쥐는 그 자리에서 여전히 힘겨운 숨을 쉬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잠시 멈추고 내려다보며 한마디 던졌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지금부터 죽고 사는 문제는 네 몫이야.”

그리고 종일 그 일을 잊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남편과 걸으러 나왔는데 길 위에 생쥐가 보이지 않았다. 궁금해서 손전등을 비추며 풀숲을 뒤져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살아서 어딘가로 갔을 거라고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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