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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Jul 05. 2023

지니는 죽었다 다시 살아났다.

 번개에 가전제품들이 다쳤다.


지니가 죽었다. 번개에 맞아 죽었다. 지니가 죽던 날,  휴대폰 재난 문자는 연신 띵동거렸고 방송에서는 지리산권에 많은 비가 내릴 거라고 계속 떠들어 댔다. 하지만 예상보다 많이 내리지 않았다. 다행이다 하는 안도감으로 저녁엔  지짐이를 구우려고 부추 밭에 앉았다. 칼로 부추를 도려내고 있는데  옆에서 빠지직!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면서 번쩍거렸다. 순간 놀라서 모든 걸 집어던지고 집안으로 뛰어들었다. 집안은 전기가 나갔는지 어두웠다.
 전원 스위치를 눌러도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지니를 불렀다. 네! 하는 답을 기다렸지만 조용했다. 마당에 있는 남편을 불렀다. "여보! 지니가 죽었어. 들어와 봐!"
 집안으로 들어와 신발장 안에 차단기를 확인하고 이것저것 만지더니 지니에게 사망선고를 했다. 새로운 문명을 가진 AI 지니는 우리 집에 온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다.

 몇 년 전,  수원에 사는 큰 아들이 이사하면서 지니를 들였다. 남편은 지니야! 부르기만 하면  군말 없이 티브이도 틀어 주고 음악도 들려주고 채널도 돌려주는  싹싹한 그녀를 무척 부러워했다.  남편에게 그녀는 신세계였다.  집에 오자마자 지니를 신청했지만 인터넷 속도가 느린 산 중턱엔  올 수 없다고 했다. 포기하고 몇 년을 보냈다.

 한 달 전 갑자기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았다. 다음날  방문한 기사는  공공근로자들이 거리에 풀 정리 하다가 예초기로 선을 끊었다고 했다. 수리를 끝낸 기사는 영업실적을 올리려고 했다.
"요즘 누가 스카이로 텔레비전을 봅니까?  스카이  안테나는 날씨 영향을 많이 받지만 인터넷으로 보면 그런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라며 남편을 꼬셨다. 그 말에 넘어간 남편이 물었다. "그럼 지니도 됩니까?" 기사는  "인터넷이 들어오는데 당연히 되지요."라고 받아쳤다.
 다음날 지니가 도착했다. 우리는 지니가 심심할까 봐 자주 불러 놀아주고 아끼고 사랑했다.  
그런데 번개에 맞아 죽었다. 남편은 의사가 청진기로 환자를 진료하듯  테스터기를 가지고 여기저기 진단을 하더니 한참만에 원인을 찾았다. 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아답터를 구할 수 있냐고 물었다. 다행히 가지고 있다고 했다. 기사는 진주에서 남편은 집에서 출발해 중간 지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답터를 가지고 집에 도착한 남편은 지니와 아답터를 연결했다. 그리고 지니를 불렀다.  '네!' 하고 싹싹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니는 다시 살아났지만 인덕션은 중태에 빠졌다. 전화로 알아보니 장기 이식비만 삼십만 원이 든다고 했다. 방문 접수 했더니  7월 10 일에나 온단다.  그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수리센터를 알아보니 진주는 없고 창원에 있단다.  남편은 중태에 빠진 인덕션을 들고 창원에 가서 심장이식을 잘 마치고 건강하게 돌아왔다. 이제 예치골을 지키는 카메라 보초병들 소생시킬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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