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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Jul 15. 2023

현실에 밀려나는 내 마음의 보석상자

집 아래 호수에 태양광 패널이 나타났다.

      


 수원에 살던 우리 부부는 노후엔 시골 가서 살자고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리산 종주를 하게 되었다. 지리산 능선을 걸으며 푸근하게 품어 주는 산의 매력에 빠졌다. 지리산 자락 어딘가에 자리 잡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저곳 알아보던 중 내가 태어나 자란 곳과  많이 닮은 산청이 눈에 들어왔다. 공기도 깨끗하고 물도 유리알처럼 맑은 곳 산청으로 결정하고 빈집을 구하러 다녔다. 오래된 촌집을 구해서 도배만 하고 지내다가 적당한 땅이 나왔다고 해서 달려왔다. 그때가 2월이었음에도 내리쬐는 햇살은 따뜻했고 땅 아래 떡하니 자리 잡은 호수는 내 마음을 잡아맸다. 단숨에 마음을 결정한 이유였다. 하지만 구입한 땅은 가파른 산 중턱이고 길은 비포장이었다. 안전하지 않다는 이유로 건축 허가가 나오지 않았다. 허가가 나오기를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 이리저리 알아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땅을 소개해준 현지인에게 허가받는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나서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땅을 구입하고 2년 만이었다.  빨리 내 집을 짓고 싶은 마음에 숨도 쉬지 않고 집을 짓기 시작했다. 2013년 9월 30일 첫 삽을 뜨고 바닥에 철근을 묶어 기초를 다지기 시작해서 11월 21일 이사했다. 이사한 첫날밤 너무도 설레어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뒤척이다 거실로 나오니 달빛이 들어와 제집인 양 거실에 누워 있었다. 그 옆에 누우니 달빛이 이불을 덮어 주었다. 난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며 잠이 들었다. 눈뜨면 호수를 내려다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봄이면 햇살이 호수에 낮게 들앉아 모락모락 물안개를 피워 춤사위를 풀어냈다. 연두는 '톡톡' 싹을 틔워 엉금엉금 산으로 기어 올라가 겨우내 헐벗었던 나무들에게 옷을 입혀 주었다.

 여름엔 소나기가 지나다 일곱 빛깔무지개를 뿌려 놓았다. 그 무지개는 산으로 힘차게 뻗어 초록의 둥근 틀을 낀 하늘에 수를 놓았다. 장마철이 되면 안개들은 빗줄기를 붓 삼아 초록 도화지에 수묵화를 그려 놓았다. 매번 같은 그림은 없었다.

 가을이면 쨍한 햇살이 호수에 빠져 반짝이는 윤슬을 토해냈다. 노랗게 물든 떡갈나무 잎은 소리 없이 내려와 호수 위에 누워 쉬어 가곤 했다. 그 풍경들에 빠져 있다 보면 어느새 내 손엔 커피잔이 들려 있었다.

 겨울엔 동이 트기 전부터 청둥오리들이 놀러 와서 노래자랑을 했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나만의 세레나데가 되어 귀를 즐겁게 했다. 나는 아름다운 풍경들을 바라볼 수 있는 언덕을 예치골이라 이름 지었다. 예치골 아래 호수는 낭만이었고, 평화였고, 이상을 품은 보석상자였다. 그 보석상자는 언제나 내 곁에서 영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집을 짓고 8년이 지난 어느 날, 호수 건너에서 무서운 기계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매일 새벽부터 해 질 무렵까지 그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러더니 호수 위에 태양광 패널이 띄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작은 집채만 한 크기의 패널 하나를 띄우더니 호수 구석으로 옮겼다. 그리고 또 만들어 옮기기를 반복하더니 어느새 호수 위를 덮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참담했다. 그나마 길모퉁이 돌아 호수 안쪽에 설치해 괜찮다고 자신을 달래 보지만 위로되지 않았다.     

 호수 둘레길은 내가 매일 걷는 길이다. 호수를 가득 채운 패널을 보며 많은 생각들이 뒤엉켰다. 대체에너지가 시급한 지금이다. 경기가 불안정한 시대, 석윳값이 오르고 전기세와 가스료가 올랐다. 어디 그뿐이랴? 코로나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고 물가는 무섭게 치솟고 있다. 태양을 이용해 에너지를 얻는다면 심각한 경제난을 극복하고 환경오염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겠지.라고 자신과 타협했다.


 예치골의 하늘은 내 작은 왕국의 지붕이 되었고 숲과 나무들은 친구가 되었다. 밤하늘은 멍석에 누워 별을 헤아리던 어린 시절의 고향 집 마당으로 데려다주기도 했다. 누구의 참견도 받지 않고 오롯이 혼자만의 일상을 즐겼다. 그런데 주변에 집 한 채가 생기더니 어느새 세 채의 집이 생겼다. 태양광 패널이 띄워진 호수에선 밤마다 번쩍번쩍 도깨비불이 돌아다니고 있다. 내 마음의 보석상자가 현실에 밀려나지 않기를 바라는 건 덧없는  욕심인 걸까? 하지만 숲 속 작은 왕국이 더는 다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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