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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Jul 19. 2023

나는 매일 성장한다.

처음으로 셀프 주유하던 날

                   

   운전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내가 낯선 길을 달리고 있다. 1998년에 면허를 땄지만 도시에서는 대중교통이 자유로워 운전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았다.  십 년 전 귀촌하면서 집 앞으로 버스가 두 번밖에 다니지 않아 시작한 운전이었다. 그러다 보니 집 근처만 왔다 갔다 하는 시골길 운전자였다. 운전을 시작한 지 5년째, 그동안 두 번의 접촉 사고가 있었다. 순간의 아찔함과 두려움을 경험하고 나니 운전하는 일은 더더욱 즐겁지 않았다.


 산청읍에 볼일이 있어 아침 일찍 서둘러 나왔다. 볼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려다 멈췄다. 모처럼 일찍 나왔는데 이대로 집으로 가기에는 왠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차 안에 앉아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북천으로 양귀비꽃을 보러 가기로 했다. 네비 화면에 목적지를 입력했다. 북천까지 걸리는 시간은 1시간 20분, 그 정도면 혼자서도 충분히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언제까지 두려움에 떨고 있을 거야? 무엇이든 처음이 힘든 거야. 한번 용기를 내 보는 거야!’ 스스로를 다독였다. 긴장감과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크게 심호흡하고 운전대를 잡고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앞만 보며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네비양 얼굴에 연료가 부족하다는 문구가 떴다. 계기판에 빨간 컵은 기름을 채우라고 재촉했다. 낯선 길에서 기름이 떨어져 가고 있다. 어떡하지? 속도를 줄이고 주변을 살폈지만 당황한 나머지 몇 군데의 주유소를 지나치고 말았다. 겨우 주유소를 찾았지만 하필이면 셀프 주유소였다. 그동안 한 번도 셀프 주유를 해본 적이 없었다. 기름을 넣을 때도 셀프 주유소가 나오면 지나쳐서 직원이 넣어 주는 주유소를 찾아 기름을 넣었다. 당황스럽고 난감했지만 부딪혀 보기로 했다. 깊은 심호흡으로 긴장된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에서 내렸다. 먼저 차의 주유구 뚜껑을 열었다. 처음 열어 본 뚜껑은 다행히 잘 열렸다. 돌아서서 기계의 화면을 찾았다. 키가 작은 나에게는 화면이 높아 머리를 뒤로 젖히고 나서야 겨우 시작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버튼을 누르니 또랑또랑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계에서 나오는 기계양의 목소리 친절했다. 시키는 순서대로 버튼을 누르고 결제 금액을 선택하고 주유기를 뽑아 주유구에 꽂았다. 처음 주유구 뚜껑을 열어 봤다. 처음 주유기를 잡아봤다. 모든 것이 처음인지라 기름이 들어가는지 안 들어가는지 당최 알 수 없었다. 한참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이상해서 다시 화면을 올려 보았다. 화면에는 천 원 단위, 만원 단위 어쩌고저쩌고 문구가 떠 있었다. 무슨 말인지 몰라 무작정 천 원 단위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주유기를 주유구에서 뺐다 다시 넣었더니 그제야 ‘쉬이익’ 기름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주유가 끝났습니다. 주유기를 주유구에서 빼서 안전하게 걸어 주시고,’ 하는 기계양의 친절한 목소리가 들렸다. 난 시키는 대로 주유기를 제자리에 걸고 주유구 뚜껑도 안전하게 잘 닫았다. 영수증을 뽑아 결제 금액을 보고 실소를 터트렸다. 분명히 5만 원 결제 버튼을 눌렀는데 영수증에 찍힌 금액은 1.000원이었다. 잘못 봤나? 생각하며 다시 봐도 1.000원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며 식은땀이 났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마음을 다잡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카드를 읽히는데 기계는 읽을 수 없다며 잠시 후 다시 시도하라는 문구가 떴다. 잠시 기다렸다 다시 버튼을 누르고 카드를 읽혔지만 번번이 읽을 수 없다는 문자가 떴다.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할까 생각도 해 봤지만 창피함이 앞서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다행히 바로 다른 주유소가 나타나 기름을 넣을 수 있었다. 우여곡절 기름을 넣고 낯선 길을 달리는데 어이가 없어 자꾸만 배실배실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실없이 웃다가 내 머리통을 쥐어박기도 하다가 내게 주문을 걸듯 중얼거렸다. '괜찮아. 누구든 처음은 있는 거야. 한번 해 봤으니까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다들 처음은 어설프고 서툴고 그런 거야, 을순아! 너는 오늘 그만큼 성장한 거야.'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처음으로 셀프 주유를 해봤다. 혼자 낯선 길을 운전해서 원하는 목적지까지 갔다가 집까지 안전하게 도착했다. 이제 나는 그만큼 성장한 것이다. 처음이라고 낯설다고 피하지도 주저하지도 말아야지. 당당하게 도전해야지. 나의 또 다른 성장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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