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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Jul 21. 2023

남편의 손 맛

비 오는 날 만들어 먹는 김치 수제비

 긴 장마로 종일 남편 얼굴을 보고 지낸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삼시 세끼를 차려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늘은 하염없이 비를 쏟아내고 텔레비전에서는 수재민들의 안타까운 사연과 심각성을 보도하고 있다. 오늘이 고비라는데 더 이상 비 피해가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아침밥 먹고 설거지하고 돌아섰는데 남편은 또 배가 고프단다. 시골 살림살이에 특별한 별미도 없다. 삼시 세끼 밥 먹는 것도 질리고 가끔 구워 먹던 지짐이도 질려가고 있다. 무얼 해 먹을까? 궁리하다 김장 김치 쫑쫑 썰어 넣고 끓인 수제비가 생각났다. 남편은 내가 하루라도 집을 비우면 삼시 세끼를 인스턴트식으로 대신하곤 했다. 이번 기회에 라면 밖에 끓일 줄 모르는 남편에게 요리의 기본도 가르치며 부려 먹기로 했다.

“여보! 김치 수제비 만들까 하는데 내가 반죽하는 동안 당신이 국물 만들래?”

남편은 소가 되새김질하는 표정을 지으며 멀뚱멀뚱 쳐다봤다. 내가 재차 물었다.

“할 거야? 안 할 거야?”

다그침에 남편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뭐,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데?”

“일단 김장 김치 한 포기 꺼내서 쫑쫑 썰고 돼지고기도 잘게 썰어. 양파도 다져서 다 때려 넣고 볶아.”

남편이 도마 위에 김치를 올려놓고 한 손에 칼을 들고서 다시 묻는다.

“어떻게 썰어야 하는데?”

“으이구! 마누라 잘 둔 덕에 칼질을 해봤어야지. 34년을 살면서 칼질 한번 안 시킨 마누라 고마운 줄은 알아?”

크게 생색을 내며 다시 한번 알려 주었다. 남편의 어설픈 칼질은 도마 위에서 ‘투박투박’ 소리를 냈다. 답답했지만 인내하며 기다렸다. 남편은 냄비에 재료를 넣고 볶다가 물을 부어 놓고 다시 거실로 나갔다.

나는 밀가루에 계란 두 개 깨 넣고 소금물 만들어 붓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릇을 빙빙 돌려가며 반죽을 치댔다. 그 사이 국물이 팔팔 끓기 시작했다. 다시 남편을 불렀다.

“여보! 와서 같이 수제비 반죽 떠 넣자!”

남편이 어슬렁어슬렁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내가 직접 시범을 보이며 설명했다.

“일단 손에 물을 묻히고 이렇게 반죽을 얇게 펴서 먹기 좋게 떼어 넣으면 되는 거야.”

남편 손이 느릿느릿 움직였다. 투박한 손놀림만큼 떼어 넣는 수제비도 큼직하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지켜보기만 했다. 잔소리하면 역효과가 날것이 뻔했다. 남편과 내가 떼어 넣은 반죽이 붙지 않게 수저로 휘휘 저어가며 수제비를 완성했다.     

뚝배기에 수제비를 담아 식탁에 올려놓고 국물 한 수저 떠서 넘겼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 국물이 가슴을 따뜻이 데워 주었다. 남편 손맛이 들어간 수제비는 유난히 칼칼하고 시원했다.

“우와! 국물맛이 짱이다. 당신 손맛이 이리 깊은 줄 미처 몰랐네. 왜 이제 알았지?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걸. 앞으로 종종 당신 손맛 좀 빌려주라.”

아끼지 않는 칭찬에 남편 얼굴이 하회탈이 된다. 그런 남편 얼굴을 보며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오늘 요리 수업 어땠어?”

남편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우리는 수제비 그릇에 코를 박고 두 그릇씩 거뜬히 비워냈다.      

2주째 내리는 장맛비로 습하고 눅눅한 날이 계속되는 요즘이다. 수재민들의 안타까운 사연은 긴 장마로 지친 마음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 불쾌지수가 높으니 순간순간 짜증도 밀려온다. 장대비가 내리던 날 남편과 함께한 요리 수업 덕분에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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