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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Jul 24. 2023

나눠 먹으면 안 되겠니?

 텃밭에 심어 놓은 농작물들을 새들에게 다 빼앗겼다.


              

 참깨 씨앗을 파종했다. 양파 수확한 밭에 거름을 뿌리고 구멍 뚫린 비닐을 덮고 날아가지 않도록 흙을 올려 눌러 주었다. 손가락으로 구멍마다 한 꼬집씩 넣은 후 흙으로 살짝 덮어 주었다. 일주일 정도 지나고 얼마나 발아가 되었나 보러 밭으로 갔다. 그런데 절반 이상이 싹은 보이지 않고 빈 구멍으로 남아 있었다. 내가 씨앗을 잘못 심었나? 아니면 참깨 상태가 좋지 않은 건가? 생각하며 다시 심으려고 쪼그리고 앉아 빈 구멍마다 넣어 주었다.  흙을 덮는데 또 군데군데 씨앗이 보이지 않았다. 넣는 것을 빼먹었나 하면서 자세히 보니 참깨 씨앗보다 덩치가 작은 개미들이 끙끙거리며 씨앗을 옮기고 있었다. 지난번 뿌린 씨앗이 발아되지 않은 것도 방금 씨앗을 뿌렸는데 빈 구멍으로 있는 것도 모두 개미들의 짓이었다.

"야! 이놈들아! 어쩌자고 그리 다 가져가느냐 말이다. 나도 좀 먹자. 나는 너희들과 나눠 먹을 생각 하고 넉넉히 뿌렸는데 너희들은 양심도 없이 다 가져가느냐 말이다. 적어도 한 구멍에 세 알은 남겨 두어야지."

 쭈그리고 앉아 개미들에게 호통을 쳐 보지만 그들은 들은 체도 않고 본인들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개미가 가져가는 것을 더 이상 말릴 방법이 없었다. 텃밭 농사를 지으며 유기농을 고집하는 나는 약을 뿌려 개미들을 죽일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씨앗을 넉넉하게 뿌리고 싹이 나오면 그것을 솎아 옮겨심기로 생각을 바꿨다. 빈 구멍마다 다시 넉넉하게 채우고 일어섰다.

 마늘 캔 밭엔 옥수수를 심었다. 싹이 얼마나 자랐나 보려고 돌아섰다. 그런데 잘 자라던 싹이 뽑혀서 널브러져 있었다.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 살펴보는데 옥수수가 자라던 곳엔 갓난쟁이의 주먹만 한 크기에 구멍이 파여 있었다. 그 구멍을 보니 산까치들이 씨앗을 파먹고 남긴 흔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많던 옥수수 싹은 죄다 뽑혀서 시들어 가고 있었다.

올해 들어 까치와 산까치. 직박구리들이 꽃밭이며 텃밭에 유난히 자주 나타나 헤집어 놓았다.  약을 치지 않아 흙속에 지렁이나 굼벵이. 애벌레가 득실거리니 그것들을 잡아먹기 위해 나타났다.



 어른들이 콩을 심을 때 세 알을 심는 거라고 했다. 그 이유는 한 알은 새가 먹고 한 알은 땅속 벌레가 먹고 한 알은 사람이 먹는 거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더 넉넉하게 심었는데 한 개도 남아 있지 않다. 이제 막 이쁘게 올라오던 옥수수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맥이 빠졌다. 해마다 옥수수를 심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 당황했다. 허탈감에 눈물이 났다. 참깨는 개미가 옥수수는 새들이 오이와 호박은 노란 벌레들이 잎을 다 갉아먹고 고추는 진딧물과 노린재들이 망쳐 놓는다. 지금은 토마토가 예쁘게 익고 있다. 채 익기도 전에 새들이 쪼아 놓는다. 다 먹지도 않으면서 쪼아 놓기만 해서 먹을 수도 없게 만들었다. 과일도 약을 하지 않으면 다 떨어지고 먹을 게 없다. 정말 약을 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  

 귀촌 후, 자급자족하려고 농사를 짓는다. 농사가 흉작이더라도 두 식구 먹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애가 타고 속상한데 생계가 걸린 농부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10년째 약 없이 텃밭 농사를  짓고 있다. 늘 수확하는 양보다 버려지는 양이  많았다. 오늘도 유기농법과 일반농법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숲에 모여서 꽥꽥거리며 수다 떨고 있는 때까치 놈들을 향해 소리 질렀다. 이놈들아! 제발 나눠 먹으면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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