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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Dec 23. 2023

 10년의 기다림


  우리 집 마당 한가운데에는 비파나무 한그루가 자라고 있다.
10년 전 지인의 집에 갔더니  테이블에 살구가 한 바구니 담겨 있었다. 살구를 워낙 좋아하던 나는 한 알을 통째로 입에 넣었다. 그런데 내가 기억하는 살구의 맛이 아니었다. 그 열매가 비파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10년 전 먹어본 기억이라 확실하진 않지만 살구는 약간 신맛이 있는 반면 비파는 좀 더 단맛이 났던 것 같다.  이름이 낯설어 수입 과일인가 했는데 추위에 약해 남부지방에서만 자라는 나무였다.

 처음 보는 열매라 씨앗을 심으면 발아가 될까?라는 호기심이 생겼다. 집으로 오면서 씨앗 몇 개를 가져왔다. 그것을  흙에 묻어 놓고 잊어버리고 있었다.

 몇 달의 시간이 지났을까? 마당에 화단에 풀 작업을 하느라 호미를 들고 돌아치고 있었다. 그런데  화단 한쪽에 처음 보는 어린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비파씨앗을 묻어 두었던 것이었다. 씨앗을 심었는데  싹을 틔우고 나무로 자란다는 게 신기해서 한참을 들여다봤다. 어린 묘목이지만 클 것을 생각하면 한 군데 심어 놓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묘목을 캐서 적당한 곳으로 옮겨심기로 했다.

 집 주변에 군데군데 옮겨 심었다. 한 그루는 마당 한가운데에 심었다. 다른 곳에 심은 나무는 열심히 물도 주고 관심도 주었지만 뿌리내리지 못하고 다 죽었다. 양지바른 마당에 심은 나무만 살았다. 하지만 겨울의 환경이 맞지 않은 건지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그 타령이었다. 환경에 맞지 않는 나무를 심은 것은 헛된 욕심인 걸까? 그냥 캐낼까? 고민하게 만들었다. 1년만 1년만 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5년쯤 지나니 환경에 적응했는지 자라는 속도가 달라졌다.
나의 욕심은 새끼를 치기 시작했다. 남편과 나는 잘 자라라고 거름을  더 많이 주었다. 이제는

는 꽃이 피려나 기다리다 실망하면서 여러 해를 보냈다.
겨울이 되면 다른 나무들은 잎을 다 떨구었다. 비파나무는 겨울에도 푸른 잎을 달고 있어 마당의 황막함을 덜어 주는 걸로  위안 삼았다.
 



 올해도 겨울은 깊어 가는데 여전히 꽃은 보이지 않았다. 남편은 나뭇잎을 이리저리

 만지며 다른 곳에 있는 비파나무는 꽃이 다 피었는데 라며 꽃이 피기를 기다렸다. 나는 역시 생육환경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 10년이 지나도록 꽃도 피지 않는 나무를 베어내자고 했다. 나무를 이리저리 살피던 남편은 기다린 시간이 아깝다며  꽃이 겨울에 핀다니까 올 겨울이 지나도 피지 않으면 내년에 베어 내자고 했다.







 남편 퇴근시간에 맞춰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주방 창 너머로 남편의 트럭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잠시 후, 거실 문이 열리더니 남편의 달뜬 목소리가 주방을 향해 달려왔다.
"여보!  여보!  빨리 나와봐! 내가 신기한 거 보여 줄 테니까 빨리 나와봐!"
김치찌개에 넣으려고 파를 썰고 있던 나는 주방으로 달려오는 남편의 목소리를 걷어찼다.
"날씨도 추운데 당신이 들어오면 되지! 뭘 자꾸 나오라고 그래!"
"가지고 들어 갈 수가 없으니 그러지. 잠깐만 나와봐!"
칼을 도마에 던지다시피 놓고 터덜터덜 마당으로 나갔다.  남편은 비파나무 앞에 서 있었다.
내 모습을 본 남편은 검지 손가락으로 나무의 한쪽을 가리켰다.
"여기 봐봐! 비파나무에 꽃이 피었어. 여기도 피었고."
털신을 신으려고 발을 넣던 나는 신발을 칙칙칙 끌면서 나무 앞으로 달려갔다.
"정말? 정말? 어디? 어어디! 내 너를 보려고 10 년을 기다렸단 말이다."
 키가 작은 나는 깡충깡충 뛰면서 꽃을 보려고 목을 쭈욱 빼고 안간힘을 썼다.
남편은 꽃이 잘 보이도록 두 손으로 비파잎을 벌렸다. 그곳에는 정말 비파꽃이 피어 있었다. 다른 나무에 핀 것처럼 탐스럽지는 않지만 꽃을 피운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달뜬 나의 목소리가 남편을 향했다.
"여보! 그럼 우리 내년엔 비파 열매를 먹을 수 있는 거야?"  나의 욕심은 또 새끼를 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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